신뢰의 붕괴는 권력을 폭력으로 바꾸고 대화의 언어를 선전과 선동의 언어로 변질시켜
누구나 동의하는 보편성과 상대방 기만하지 않는 진실성을 충족시키는 정치를 해야


“‘편파적이다’ ‘어용 방송이다’라고 하는데, 당연한 얘기를 왜 하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KBS 2TV 토크쇼 ‘대화의 희열2’에서 한 말이다. 유 이사장이 진보진영의 가치와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시작한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가 정치적 행위라는 비판에 대한 대답이었다. 솔직하고 쿨하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자신의 입장을 아무런 가식 없이 직선적으로 내뱉는 유 이사장의 화법이 새삼 놀라운 것은 아니다.

모든 정치적 의견은 사실 일종의 편견이다. 자신이 추구하고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과 정당에 따라 의견이 다르고, 어느 정파와 정당도 사회 전체에 대한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의견을 편견이라 한다. 종종 진보적 좌파로 분류되는 정치 이력으로 볼 때, 그가 현 정권에 쏠려 있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이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진보 정권의 ‘어용 지식인’으로 일컫는 그를 탓할 이유도 없다. 어용이 본래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데도 거리낌 없이 어용 지식인을 자칭하는 것은 페이크 뉴스가 범람하는 상황에서 진보 정권을 적극 홍보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유시민의 ‘솔직한’ 말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선거제도 및 사법개혁안 패스트트랙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국회에서의 난장판이 오버랩돼서인지도 모른다. 고소와 고발이 난무하고,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자유한국당 해산과 더불어민주당 해산이 맞붙고 있다. 대화와 타협은커녕 토론마저 사라지고 갈등과 정쟁만이 첨예화한다. 정치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밑바닥이었지만, 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제 염증과 혐오로 변할 조짐이 보인다.

좋은 사회는 모두 상호 신뢰를 토대로 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에 의하면 시민들이 진지하고 세심하게 협동할 때 축적되는 사회자본인 신뢰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공을 가져온다. 이에 반해 신뢰의 쇠퇴는 소송, 규제, 계약상의 강제라는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적 정치질서의 토대를 침식시킨다. 신뢰가 붕괴하면 진리와 진실은 무의미해지고, 사회는 각자도생의 정글로 변하고, 정치는 정파적 이해관계의 전쟁터가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오직 자신과 자기편만을 믿기 때문에 독선이 판을 친다.

신뢰 붕괴는 페이크 뉴스의 사회적 근원이다. 신뢰가 사라지면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객관적 사실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사실에 대한 합리적 평가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정치적 신념에 호소한다. 소위 말하는 ‘탈(脫)진실(post-truth)’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누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움직이는가’라는 선전과 선동이 문제이지,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나 자료만을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은 더욱 강화된다. 비밀과 기만, 그리고 공공연한 거짓말이 정치의 일상이 되는 것이다.

신뢰의 붕괴는 권력을 폭력으로 바꾸고, 대화의 언어를 선전과 선동의 언어로 변질시킨다. 만약 정치가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전쟁과 다를 바 없다면, 여기서 다른 수단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말’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과 정책을 드러내는 것도 말이고, 상대방을 설득시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권력의 수단도 역시 말이다. 정치가 말싸움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를 지향한다는 ‘보편성’의 요구와 설령 다른 의견을 갖고 있을지라도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기만하지 않는다는 ‘진실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때에만 정치는 말로 하는 싸움이다. 정치적 의견이 아무리 편파적일지라도 보편의 옷을 입어야 하고, 정치 방송이 아무리 특정한 정파의 선전을 목표로 할지라도 사실에 기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뢰가 붕괴하면 다양한 말들이 춤을 춘다. 쉬지 않고 틀어대는 종편의 정치시사프로그램은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정치적 대립을 생산하고, 정당한 정치적 입장들이 평등하게 경합을 벌이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여기에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디지털 매체가 활개를 친다. 한편에는 ‘알릴레오’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TV홍카콜라’가 있다. 모든 방송이 정치적 편파성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은 결국 진실을 숨기고, 대중을 혼란시킴으로써 진실인 듯 진실 아닌 페이크 뉴스를 양산한다. 누구나 자기편만 믿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결국 정치는 파괴된다. 편파성의 솔직한 인정이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이유이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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