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공개된 문재인정부의 세 번째 추가경정예산 6조7000억원은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나랏빚을 40% 육박하게 늘렸다는 ‘빚내기 추경’과 규모가 턱없이 작다는 ‘미니 추경’ 평가가 동시에 쏟아졌다. 그러나 언뜻 생각해보면 두 평가는 공존할 수 없다. 지출은 늘리되 ‘빚’은 지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가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수중에 돈이 많으면 된다. 하지만 올해 정부의 수입은 넉넉하지 않은 편이다. 결국 ‘돈은 없고, 빚은 늘리면 안되고, 지출은 최대한 늘려야 한다’라는 불가능한 숙제가 남는다.

시간을 돌려 수입이 좋았던 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모순된 숙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올해와 달리 작년 정부의 수입은 괜찮은 편이었다. 예상보다 세금이 25조원이 더 걷혔다. 그럼에도 정부가 돈을 아껴야 한다는 주장과 과감하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 동시에 나왔다. 재정정책을 둘러싼 이 같은 엇갈린 시선은 과거에도,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추경 통과 시 39.5%다. 미국(136.0%) 일본(233.0%) 등과 비교하면 양호하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돈을 더 쓸 여력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한다. 주장이 엇갈리는 건 그 이후다. ‘얼마나 더 쓸 것인가’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미래를, 진보적인 사람들은 현재를 본다. 보수 쪽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빠른 고령화, 취약한 연금 구조, 저성장을 거론한다. 가만히 있어도 미래에 나랏빚이 폭증하기 때문에 현재 수준을 최대한 유지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수입과 대출에 여력이 있는 20대에 돈을 펑펑 쓰면 노후에 엄청난 위기가 온다는 뜻이다.

반면 진보 쪽은 발상의 전환을 말한다. 여력이 있을 때 지출을 늘려 나랏빚이 폭증할 근본 원인을 없애자는 것이다. 사실 재정정책의 모순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있다. 성장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정부 수입은 당연히 좋아져 지출을 많이 할 수 있다. 개인이 성공하면 대출 여력이 늘어나듯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가채무 비율은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한다. GDP가 커지면 채무 비율을 유지하면서도 빚을 더 많이 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산업 위기, 양극화 등에 과감하게 돈을 투입해 저성장을 탈피한다면 모든 모순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주요국들이 현재보다 GDP 대비 0.5%를 매년 꾸준히 더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채무 비율은 초반 평균 3~4년 상승할 수 있지만 그 이후 안정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채무 비율을 다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팽팽한 논쟁 속에서 일단 정부는 몸을 낮추고 있다. 최대한 보수적인 재정 운용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 편성 때도 국가채무 비율을 40% 안팎에서 지키려고 노력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정부를 ‘재정 강박증’이라고 부른다. 겉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돈을 쓰기 두려워하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강박증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보신주의일 수 있다. 하지만 병의 근본 원인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돈을 많이 쓰려면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국가채무 비율이 잠시 증가해도 중장기 성장을 위해 정부의 지출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재정 효과가 성장으로 이어질 때까지 그 과정을 버틸 수 있는 든든한 수입 기반도 있어야 한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인식도 뒤따라와야 한다.

이 모든 건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실무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문재인정부는 공약에서 5년간 61조원의 증세(세법 개정+탈루세금 징수 강화)를 제시했지만 정권 출범 후 17조1000억원으로 규모를 줄였다. 부족한 재원은 초과 세수와 기금 활용 등으로 채우겠다고 발표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하고 싶지만 빚을 늘리기 싫고, 증세도 최소화하는 어정쩡한 기조다. 그 기조가 실무 공무원들을 ‘재정 강박증’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닐까. 정치적 결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론도 중요하다. 청와대와 여론이 확장적 재정정책의 진통까지 인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재정 강박증은 치료될 수 있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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