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리더십으로 수평적 정권교체 이룬 뒤 반대파들을
포용하는 국민화합 정치를 펼친 김대중 전 대통령
文정부, 실패한 노무현정부가 아니라 DJ의 길로 나아가야


여야가 마주 보고 대치하는 정치 현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시 생각해 본다. 오랜 기간 우리나라 보수세력은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을 가장 큰 가치로 삼으면서도 민주주의와 소외 계층 보호 등에는 소극적인 기득권층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주창하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이 강조한 혁신적 정치적 가치는 기존의 틀에 안주했던 보수 세력에게 상당한 자극제가 돼 보수진영에 내부혁신의 계기를 제공했고, 국가경영의 비전을 둘러싸고 서로 경쟁하는 전기를 만들었다. 당시 한나라당의 친서민 중도노선도 그 근원을 따지자면 김 전 대통령의 중산층을 비롯한 서민중시 정책과 유사한 면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적 반대세력으로부터 급진적이고 과격하다고 공격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집권 이후 일부 보수진영의 우려와 달리 온건하고 개혁적인 노선을 추구했다. 우리나라 정치사상 최초로 실질적 집권세력의 교체가 수평적,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실용적인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집권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최대 성과는 1997년 외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단군 이래 최대의 국가 위기라는 상황에서 탁월한 위기관리 리더십을 발휘해 침체한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과감히 시행한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대기업의 과잉 중복투자를 제거함으로써 경제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백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대가도 치러야 했고 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기업의 경쟁력은 한 단계 더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국민화합 정치는 그가 남긴 또 하나의 커다란 유산이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정적에 대한 보복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국민화합을 제일의 국정지표로 제시하고 반대파들에게 관용의 자세를 취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혹독한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김 전 대통령은 권좌에 올랐을 때 자신을 핍박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화해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면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 전 대통령이 영·호남 간 지역갈등을 봉합하는 지역통합 정치를 시도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노태우 정권 인사인 경북 출신의 김중권씨를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을 비롯해 영남 출신 인사들을 집권 초기에 많이 등용했던 것은 그 일환이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지역통합은 성공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정권의 영남편중에서 호남편중으로 바뀐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장점 중에는 정치지도자로서 국제감각을 빼놓을 수 없다. 아마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국제적 감각이 뛰어난 지도자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한국 정치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대미정책에서 펼친 이른바 ‘용미론’은 한·미동맹의 실용주의적 원칙을 제시하면서,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김 전 대통령이 보수층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 햇볕 정책으로 상징되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을 나름대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한·미 간의 불필요한 외교적 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주로 과보다 공을 음미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정치는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서 이미 협치가 실종된 지 오래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국민통합이 무색하게 지금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로 대립해 갈등하고 있다. 집권 3년 차로 이어가는 적폐청산은 끝을 모르게 계속되고 있다. 기소된 전 정권 인사가 120명 가깝고, 이들에게 선고된 징역형 합계가 130년을 넘는단다. 경제는 생산, 소비, 투자 등 거시경제지표가 빨간불을 보이며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선한 의도로 시작한 소득주도 성장의 결과는 고용 및 분배 악화와 성장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빤짝했던 남북 관계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생사를 가르는 우리 외교는 지금 점점 고립무원의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누가 뭐래도 노무현정부의 제2기 정부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노무현정부 때 좌고우면하며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반드시 완수하자는 의지가 완고하다 못해 집착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스스로 폐족이라 불렀던 노무현정부의 실패에서 답을 구할 게 아니다. 지금 문재인정부가 참고할 길은 그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혁신적, 실용적, 전문적, 화합적, 국제적 리더십이 아닐까.

정두언 전 국회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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