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1) 자녀교육 유일한 대안 ‘말씀암송’ 전수 47년

말씀암송 태교로 태어난 아이들 하나님 성품 닮는다는 믿음으로 한국교회 부흥의 불씨 퍼트려

규장문화사 설립자로 한국 기독 출판의 산증인인 여운학 장로가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동광교회에서 개최된 ‘303비전 성경암송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지난 47년간 말씀암송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 안에서 자녀양육을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말씀암송의 중요성을 전수해왔다.

내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의 비전은 간단하다.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엄마가 말씀을 암송하는 말씀암송 태교로 태어난 아이들은 예외 없이 성품이 온순하고 총명하다는 것이다. 말씀암송태교를 받지 못하고 태어나도 서너 살부터 엄마가 즐겁게 암송하는 것을 본 아이들은 엄마보다 더 쉽게 암송하곤 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엄마의 성경암송교육만이 미래의 교회 교육과 자녀 교육의 유일한 대안임을 확신하게 됐다. 나는 1200절 이상의 성경말씀을 암송하는 가운데 1999년 ‘이슬비성경암송학교’를 개설했다. 2005년에는 30년을 1세대로 해 3세대 이후를 바라보는 ‘303비전’을 선포하면서 ‘303비전성경암송학교’로 개명했다. 이 303비전은 지금까지 교육받은 1만명 이상의 엄마들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엄마가 동참했던 것은 말씀암송과 말씀암송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자녀의 성품까지 만지시고 훈련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자녀들은 세상을 이끌고 섬길 줄 아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자녀에게 말씀사랑을 심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의 불씨를 퍼뜨리게 된 스토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1933년 4월 충북 영동군 학산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영동이 포도와 인삼으로 유명하지만, 당시는 감이 유명했다. 살목이라는 동네엔 우리 집 소유의 감나무가 많았다. 늦가을만 되면 동네 사람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해서 감을 각자 자기 집에 가져가 정성 들여 깎아왔다. 우리 집은 곶감 말리는 일로 바빴다.

나는 8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자랐다. 동네 유지였던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들에 대한 갈망이 컸다. 첫째 부인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낳지 못하자 둘째 부인을 들였다. 또 딸을 낳자 셋째 부인으로 나의 어머니를 맞아들였다. 당시만 해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대를 잇지 못하고 가문이 망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풍조가 강했다.

아버지는 해방 후 미군정 아래서 치러진 선거에서 초대 군수가 될 정도로 지역에서 신망을 얻던 분이었다. 부동산 등기와 관련된 대서소를 운영했는데, 토지 관련 행정에 어둡고 글자를 모르는 주민들을 대신해 등기업무를 정직하게 대행해 신망이 높았다.

개화기에 아버지는 동네 서당에서 배운 한학과 독학한 일본어로 대서소를 차렸고, 거기서 모은 돈으로 양조장을 운영했다. 집이 대궐 같지는 않아도 동네에서는 제일 좋은 함석집이었다. 앞마당에 반석을 뚫고 깊이 판 우물에서 도르래로 길어 올린 물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했다. 아버지의 존함은 학산초등학교 교실 입구에 걸린 설립 기부자 명단 맨 앞자리에 있었다.

어머니는 39세에 나를 낳은 후 심한 하혈로 사흘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다. 남편의 사랑은 많이 받았으나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로부터 가혹한 시집살이를 했다. 그 어려움을 조용히 이겨내면서 아버지를 돕던 현숙한 여인이었다. 하루는 어린 내게 조용히 말했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 제일 먼저 냉수 세 모금을 마시면 머리가 좋아진단다.”

약력=1933년 충북 영동 출생. 서울대 사범대 물리과 중퇴, 연세대 산업대학원 졸업. 규장문화사 설립자, 지하철 사랑의편지 발행인, 303비전성경암송학교 교장, '이슬비전도편지' 집필자. '말씀이 너무너무 좋아서' '말씀암송 자녀교육' '자녀사랑은 말씀암송이다' 등 저술.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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