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을 읽다 ‘미로득한방시한(未老得閑方是閑)’이란 구절과 만났다. 다산 정약용의 산문을 인용한 글이었는데, ‘아직 늙지 않았을 때 얻는 한가로움이 진짜 한가로움’이란 뜻이다. 늙으면 한가로워지는데 이건 진정한 한가로움이 아니다. 그건 할 일이 없어져서 그런 거다. 그러니 아직 늙지 않았을 때, 젊고 바쁠 때 한가로움을 얻는 것(得閑)이 진짜 한가로움이란 말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는 내면의 여유를 가진 상태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단지 시간적 여유가 많다거나,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어지는 한가로움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한가로움이라고나 할까. 좀 있어 보이게 표현하자면 내면과의 대화로 얻는 한가로움이라 정의해도 되겠다.

굳이 늙지 않았을 때(未老)를 강조한 걸 보면 젊고 빠릿빠릿할 때, 또는 잘나갈 때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한번 바라보라는 뜻일 게다. 그러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숱한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젊었을 때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사고의 폭을 넓혀보라는 가르침 같기도 하고, 개선장군이 로마를 행진할 때 노예가 따라가며 “메멘토 모리(너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고 외치게 한 것처럼 욱일승천할 때 겸손하라는 가르침 같기도 하고…. 봉황의 뜻을 어찌 뱁새가 알 수 있을까마는, 아무튼 이런저런 해석을 해보는 자체가 의미 있는 한가로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이 한가로움은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워라밸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워라밸은 일과 쉬는 시간의 적절한 배분, 일하지 않을 권리, 조직 내 상하관계의 수평적 이동 같은 느낌이 든다. 즉 남과 비교해 손해 안 보기, 내면보단 겉모양 중심의 생활 등 일상을 재편해 보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득한은 단지 그런 얘기가 아니다. 내면적 삶의 재조정이나 느림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 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같은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사색, 관조, 묵상 이런 단어들이 연관돼 떠오른다. 워라밸이 하드웨어 개선작업이라면 득한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이라고 할까. 부가가치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날 것 같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한가로움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남은 삶이 보다 여유 있고 품격 있을 것 같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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