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권에 노동계는 아픈 손가락이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그랬고 문재인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노동계는 우리 사회의 약자이므로 사용자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서 진보정권들이 노동계 의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을 배려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 탓이다.

노동계가 투쟁 중심의 활동을 벌여온 것은 군사 독재하에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법·제도적 한계와 기업주의 일방적인 경영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과 함께 시작된 노동운동의 대약진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억압받아온 노동자의 권리찾기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세 규합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기득권 세력으로 비치고,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비정규직 및 특수직 노동자들은 외면받고 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에 불과해 노조 없는 사업장이 훨씬 많다. 잘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노조 없는 중소기업 노동자 및 비정규직 노동자로 양극화된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배달기사들의 노조 ‘라이더유니온’이 새로 출범했다. 배달기사들은 노동자에 가깝지만 배달대행업체와 위탁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플랫폼 이코노미 확대로 양산될 이러한 특수직 노동자들을 양대 노총이 끌어안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노동절에 의미 있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과거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동이 ‘투쟁’으로 존중을 찾았다면, 앞으로의 세상에서 노동은 ‘상생’으로 존중을 찾아야 한다. 노동계 또한 우리 사회의 주류라는 자세로 함께해 주시기 바란다.” 문 대통령은 또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52시간 근로제는 모두 노동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그것을 통해 노동의 질을 높이고자 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을 노동자 소득 개선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 향상과도 연계한 것이다. 2017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29위였다.

국내 자동차업계 위기도 낮은 노동생산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노동자들이 기업주에게 경영활동의 성과를 나눠 갖자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 하지만 회사가 경영상 어려운데도 노동생산성 향상이 전제되지 않는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는 노사 갈등만 부를 뿐이다.

올해 노동절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면서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고 민주노총은 ‘투쟁’을 내세웠다.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은 “10% 남짓한 노조 조직률 속에서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투쟁방식과 구호들은 대중 속으로 스며들지 못했다”며 “투쟁 중심의 노동운동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만이 구시대의 출구이자 새 시대의 입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정책과 관련한 사회적 대화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불참과 탄력근로제 합의에 반발한 청년, 여성, 비정규직 계층별 대표 등의 의결 거부로 경사노위는 공전하고 있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상에 문제가 있다면 빨리 해결해 사회적 대화를 위한 공론화의 장으로 정상화해야 한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노동 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노동계도 경영의 한 주체라는 인식에서다. 노동자가 이제 약자나 피해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사회의 주류로서,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에도 참여해 합리적 방식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자세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노동운동이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김재중 산업부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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