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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김준동] 5060세대와 당구

70∼80년대 젊은이들 해방구였던 당구장… 베이비붐 세대 당구 열풍의 사회학 반가워


대표적인 당구 소재 영화를 꼽는다면 아마도 ‘컬러 오브 머니(The Color of Money)’일 것이다. 1986년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으로 이듬해 10월 국내에도 개봉됐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할리우드 스타 폴 뉴먼(에디 펠슨역·당시 62세)이 37세나 어린 톰 크루즈(빈센트 로리아역·25세)와 호흡을 맞춘 영화라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한 방에 전 재산을 걸고 큐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116분의 러닝 타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대학 2학년 때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수업 한두 시간쯤 건너뛰고 당구장에서 살았던 그 시절이다. 자욱한 담배 연기에 배달시킨 짜장면을 먹으면서 큐대를 잡고 일본식 당구 용어와 거친 욕설이 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중장년층이라면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한 경우가 많을 듯싶다. 당구장은 70~80년대 젊은이들의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이런 흐름에 불을 지핀 영화가 바로 ‘컬러 오브 머니’다.

이 영화에 매료돼 당구장으로 향하는 여대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당시 대학가는 당구 열풍 그 자체였다. 이랬던 당구장은 2000년대 들어 PC방에 밀려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PC방으로 몰리면서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당구장은 썰렁해져만 갔다. 1999년 2만8300여 곳에 달했던 당구장은 2003년에는 1만4900여 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세태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터다.

며칠 전 친구들과 저녁을 한 뒤 오랜만에 당구장에 들렀다. 한 친구가 내기 당구를 하자는 제안에 다들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당구장은 직장인들로 가득 찼다. 빈 당구대가 없어 씁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구가 최근 인기라는 사실은 익히 알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즐길 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듯 대학가와 골목길에서 사라져가던 당구장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당구의 부활이라고나 할까.

당구를 다시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한때 대학가 열풍을 주도했던 5060세대이다. 쓰러져가던 당구 산업을 5060세대가 살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저녁 시간 목 좋은 당구장에 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이니 말이다. 30, 40대도 있지만 대다수가 50, 60대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들이 큐대를 잡고 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이 다시 당구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주머니가 얇아진 5060세대가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 중 당구만한 것이 없다. 또래들과 사회적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다. 학창 시절 당구장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무엇보다 좋다. 당구장이 중장년에겐 동창회 장소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동문 친선 대회도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고 당구 교실을 여는 복지관도 잇달아 생기고 있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나왔다. 2014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후건강연구소가 60, 70대를 대상으로 당구와 노년 건강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주 4회 이상 당구를 즐기는 사람일수록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장년층이 당구를 즐기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을 높임으로써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분석은 주목할 점이다. 중장년층 사이의 복고 바람도 당구 열풍에 한몫했다. 2014년엔 당구 전문 채널까지 등장해 열기에 불을 지폈다. 급기야 프로당구협회(PBA)가 7일 출범한 데 이어 다음 달에는 투어 경기가 진행된다. 지상파 채널로 생중계된다니 당구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이런 현상은 수치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국 당구장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만2000여 곳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어느새 PC방 수를 앞질렀다. 한 번이라도 큐를 잡아본 사람은 1000만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참여 활동이 있는 상위 10종목에서 당구는 2016년 10위였으나 지난해엔 7위로 세 계단 뛰어올랐다.

먹고살기 위해 경쟁하랴, 가족 부양하랴 힘들게 살았던 5060세대에게 당구장은 단지 게임만 즐기는 곳이 아니다. 친구들과 젊은 날의 추억을 나누고 삶을 되돌아보는 안식처라고나 할까. 뒤돌아본 당구장에 이런 구절이 확 눈에 들어온다. ‘열심히 일한 당신 즐기고 음미하라.’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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