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갈등 속에서 최고의 타협 이끌어낸 남아공 민주화
극좌·극우 견제할 수 있는 중도좌우파 역량 때문에 가능
양 극단이 상대 발목 잡는 비토크라시가 만연한 한국…
정책 역량도 타협 기술도 겸손함도 없는 대표들 내려오시라


최악의 갈등 상황에서 최고의 타협을 끌어낸 성공사례로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가 꼽힌다. 17세기 네덜란드인 이주로 시작해 181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된 남아공은 1961년 인종차별정책을 비판하는 영국에 맞서 독립했다. 그러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수하다 1974년 유엔에서 축출됐고, 가중되는 서방의 경제제재로 국제적으로도 고립됐다.

결국 최후의 선택이 남았다. 권력을 흑인과 나눌 것인지, 아니면 유혈 충돌을 무릅쓰고 철권통치를 이어갈 것인지. 복수를 두려워한 백인들은 권력을 절대로 놓지 않으려 했고, 흑인들은 자신들이 집권하면 백인들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적대감으로 들끓었다.

극단적 갈등을 해결한 계기는 ‘몽플뢰르 시나리오 콘퍼런스’다. 1991년 9월 케이프타운 몽플뢰르 콘퍼런스센터에서 남아공을 대변할 지도자 22명이 남아공의 미래에 대해 6개월간 숙의했다. 콘퍼런스 참여자는 흑인 좌파 정치가, 우파 분리주의자, 아프리카민족회의 멤버, 노조 간부, 경제학자, 백인 기업 임원 등 다양했다. 다만 공통점은 명분을 앞세워 ‘자기 정치’를 하는 각 조직의 최고리더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차세대 리더라는 점이었다.

중재의 전권을 위임받은 이는 미래 시나리오 전문가인 로열더치셸의 임원 아담 카헤인이었다. 그는 참가자에게 다음과 같은 대화 원칙을 제시했다. ‘이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참여 못한다’라거나 ‘그런 일은 절대 안 된다’ 같은 단정적인 말은 금지. 대신에 미래의 시나리오, 즉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등의 질문만 가능.

이 원칙을 지킨 결과 합의 타결 여부, 빠른 합의 이행 여부, 정책의 지속가능성 여부 등을 조합해 네 가지 시나리오가 도출됐고,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로 풀어냈다. 그중 하나는 ‘타조 모델’인데, 소수집단인 백인 정부가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들이박고 다수 흑인의 고통을 계속 외면할 경우 닥칠 미래를 그린 것이다. ‘이카로스 모델’은 태양을 향해 계속 날아가는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끊임없는 복수의 악순환이 가져올 파국을 그렸다.

‘레임덕 모델’은 약체 정부가 들어설 경우의 혼란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반면 함께 춤을 추는 ‘플라밍고 모델’은 서로가 조금씩 양보해서 타협하면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으나 남아공 시스템은 살아남고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모델로 그려졌다.

이 모델들은 온 국민의 흥미로운 토론거리가 됐다.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후 남아공 사람들은 플라밍고 모델을 선택했다. 이로써 장기간 감옥에 있던 만델라가 석방돼 대통령이 됐으며 백인 기업가들은 보복의 불안을 벗어나 계속 투자하게 됐다. 벼랑 끝 위기의 절정에서 다양한 이해집단이 상황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꼈고, 극좌파와 극우파를 견제할 중도적 좌파와 중도적 우파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에서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개혁이 잠깐 시도된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정부 때였다. 국가부도라는 위기의 벼랑 끝에서 온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으로 뭉쳤고, 김대중정부는 노조의 양보를 촉구했다. 그 결과 대규모의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이뤄졌고, 노사정 협의 제도가 갖춰졌다. 그러나 이후의 타협은 성공하지 못했다. 스스로 준비한 시나리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커다란 파고가 고용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데,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는 전체 노동자의 5%만을 대표하는 ‘정치화된 강경파’ 노조 리더의 보이콧으로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강경파 환경론자들이 주도한 탈핵 선언으로 전력공기업의 영업이익은 몽땅 사라졌고, ‘탈핵’을 앞세운 정부가 ‘원전 수출’을 마케팅하는 코미디가 연출됐다. 반면에 차분한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는 분명치 않다. 패스트트랙을 고수한 여당과 선명성을 앞세워 표 계산을 극대화한 야당 리더 간의 육탄전 속에, 시대적 과제인 투명성 제고를 위한 미래 시나리오는 사라졌다.

저강도 위기가 장기간 지속하다 보니 마치 점점 온도가 높아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뛰쳐나올 기회를 놓치고 익어버리는 것과 같은 위험요소가 나라 곳곳에 널려 있다. 극단의 목소리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이념의 양극화로 치닫는다. 서로가 상대의 발목을 잡아버리는 비토크라시(vetocracy)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대체한 꼴이다.

타협을 이루려면 중도의 목소리가 강해져서 양극화된 갈등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극단주의자들이 효과적으로 억제돼야 한다. ‘미래 지분’을 가진 능력 있는 차세대 리더들로 새롭게 대화를 구성해 국민을 설득할 시나리오를 만들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공동체의 미래를 그릴 정책역량도, 타협의 기술도, 겸손함도 없는 대표들은 이제 그만 내려오시라.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