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종영이 제작한 ‘삼일독립선언기념탑’. 김종영미술관 제공

1세대 조각가인 김종영(1915~1982)은 될 수 있는 대로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는 ‘불각(不刻)의 미’로 일컬어지는 추상 조각의 대가다. 그런 그가 ‘삼일독립선언기념탑’을 제작했다는 것은 그리 주목받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평창32길 김종영미술관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공공미술 조각가로서의 김종영을 조명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김종영의 공공기념조형물, 그리고 지천명’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한국의 기념 조각 제작 문화의 후진적인 이면을 들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박정희 정권하에서 국가 주도로 추모탑과 애국선열 동상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 김종영은 조각계의 거장이었음에도 단 2점만 제작했다. 서대문독립공원에 복원된 ‘삼일독립선언기념탑’과 ‘포항 전몰학도충혼탑’이 그것이다.

삼일독립선언기념탑은 당시 유행했던 매끈한 표면 대신 덩어리에 생명감을 불어넣기 위해 흙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다.

좌대 위에 올려진 만세운동을 하는 5명의 군상 속에 여성 2명과 학생 1명을 포함하는 등 만세운동의 범민중적인 성격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무단 철거돼 방치됐다가 91년 지금의 자리에 복원됐다.

당시는 조각가들이 동상 제작으로 먹고산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사실적인 것을 못하네”라며 잇단 주문을 거절했다. 여기엔 동상 제작 시 발주자의 의견에 휘둘리는 현실에 대한 염증이 깔려 있었다. 실제 ‘포항 전몰학도충혼탑’은 작가의 스케치와는 전혀 다른 기린상이 조각돼 있다.

영국 런던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 조각 콩쿠르 당선작인 ‘여인 누드 입상’. 김종영미술관 제공

공공미술 조각가로서 김종영의 숨은 실력은 53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 조각 콩쿠르 당선작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뻔한 형상이 아니라 상념에 잠긴 ‘여인 누드 입상’을 통해 시적 여운을 남기는 기념물을 제작했다. 그의 의견이 관철됐더라면 한국 공공조각의 수준이 몇 단계 올라갔을 것이다. 6월 23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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