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엄마를 모시고 창경궁 행사에 다녀왔다. 꽃길을 따라 걸으며 숲해설사의 설명도 듣고 전통음악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들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화창했지만 엄마는 어쩐지 심드렁해 보였다. 모처럼 마련한 자리인데 반응이 시원찮으니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무덤덤한 표정으로 별일 없다고 대꾸한다. 어쨌든 우리는 함인정에 모인 사람들을 따라 창경궁 후원을 걷기 시작했다. 하얀 꽃이 흐드러진 나무가 나타나자 숲해설사가 나무에 얽힌 일화를 설명했다. “향기를 맡아 보세요. 그윽하죠? 그런데 가지를 꺾으면 고약한 냄새를 풍겨요. 옛사람들은 이 냄새를 이용해 파리를 쫓기도 했답니다.” 자잘한 꽃들이 뭉쳐 피어난 모양이 신기해 우리는 한참을 구경했다. 엄마가 갑자기 물었다. “나무 이름이 뭐랬지?”

해설사의 설명을 흘려들으며 딴생각에 빠져 있던 나도 못 듣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몇몇 사람에게 물어물어 기어이 귀롱나무란 걸 알아냈다. 그때부터 엄마의 심드렁한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무 하나 꽃 한 송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춘당지에서는 연못 가까이 내려가 근사한 풍경을 담기도 했다. 혹시 미끄러질까 봐 조심하라 해도 괜찮다며 돌부리와 나무 둥치를 사뿐 넘어 사진을 찍었다. 일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던 나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무덤덤한 반응에 살짝 서운했던 나를 반성해본다. 엄마의 무덤덤함은 세파를 헤치며 단단해진 마음의 굳은살일 뿐 그 속에는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흔히들 노년을 인생의 겨울로 접어든 시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무 이름을 끝까지 묻거나 위험을 무릅쓰며 풍경을 사진에 담는 모습은 통념 속의 쓸쓸한 노인과 거리가 멀었다. 순간에 집중하며 즐기는 엄마는 봄과 닮아 있었다. 어쩌면 젊은이보다 훨씬 더 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흔여덟 소녀가 맞이할 앞날의 봄들도 변함없이 찬란하기를, 부디 남은 인생 동안 꽃들이 만발하기를.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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