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보습학원 친구들과 논술 공부 모임을 결성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스스로 논제를 정한 다음 다 함께 토론하는 방식이었고, 학원 선생님이 가끔 모임에 참관해 조언을 했다. 한 여학생이 자기 아버지가 어린이의 날에 한 말이라면서 “어른의 날은 왜 없을까”라는 논제를 던졌다. 어떤 학생은 국가 예산이 부족해서라고 했고, 어떤 학생은 어른의 날을 빨간 날로 정하면 그날 하루 모든 업무가 마비돼서 사회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다분히 감상적인 의견을 말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 언제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돼버리기 때문에 날짜를 정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평소 지나치게 과묵해서 속을 알 수 없던 남학생이 종이에 적은 자신의 생각을 읽어나갔다.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가장 어린이답게 시간을 보내는 날이고, 어버이날 역시 그렇다. 아무리 평소 부모 노릇을 하지 못한 부모라 해도 자식은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감사를 표한다. 스승의 날에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선생님들은 그날 하루 체벌을 자제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어른답다’라는 것은 정의하기도 어렵거니와 어른다운 사람을 원체 찾기 힘들고, 설사 어른다운 어른이 있다 하더라도 어른 대접을 해주는 것은 참으로 낯간지러운 일이기 때문에 어른의 날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겠지만 매번 무산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른의 날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세상에 진심으로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은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싶은 나 같은 코흘리개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는 평생 그따위 날을 제정하려는 시도를 감히 하면 안 될 것이다!”

그 친구의 발표가 끝나자 커다란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선생님도 웃으며 사춘기라 그런지 모두들 어른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그때 그 친구들은 어떤 어른이 돼 있을까. 하지만 당시 어린이도 어른도 아니었던 우리는 한 가지에서만은 의견이 일치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것 말이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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