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새 희망 캐치” 던지고 치고 달리며 삶 회복

조현병 환자·노숙인으로 구성 ‘리커버리 야구단’ 훈련 현장



리커버리 야구단의 한 선수가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광나루야구장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송지수 인턴기자

자세를 낮추고 글러브 위에 오른손을 펴 보지만, 야속하게도 매번 공은 사방으로 튄다. 땡볕 아래서 몇 번을 시도하다 공을 글러브로 잡은 뒤 1루수에게 길게 송구하는 데 성공한다. 1루수의 글러브에는 뽀얀 먼지가 날리며 공이 들어온다.

프로야구였다면 큰 감흥 없이 넘겼을 ‘유격수 앞 땅볼’ 상황이지만, 이들에게는 깔끔하게 소화한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이어진 외야 플라이 캐칭 훈련에서도 10여명의 선수들은 글러브를 들고 사방을 뛰어다녔다. 대단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수비에 성공할 때마다 더그아웃에선 박수와 응원소리가 더 커졌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광나루야구장에서 진행된 국내 첫 회복야구단인 ‘리커버리 야구단’의 훈련 현장이다. 야구단은 서울 성북구에서 노숙인 자활사업을 하는 ‘바하밥집(바나바하우스)’이 지난해 9월 연습을 시작하면서 출범했다. 김현일 바하밥집 대표는 자원봉사자들과 노숙인, 조현병 환자와 자활 대상자들을 모았다. 지난달 22일에는 한빛누리재단과 뉴발란스의 후원으로 연예인 야구단 ‘조마조마’와 창단 후원경기를 가졌다.

지난달 22일 연예인 야구단 ‘조마조마’와의 후원경기를 주선한 이만수 감독이 팀원들에게 해준 사인. 송지수 인턴기자

회복을 위한 야구단이지만, 나름 ‘더블스쿼드’(야구경기에 필요한 한 팀 선수 9명의 2배인 18명 이상)도 갖췄다. 자활 대상자들과 인연을 맺은 서울 나들목교회(김형국 목사) 사역자들과 성도, 정신의학과 전문의 등도 함께 선수로 등록했다. 이날도 사역자들과 성도 10여명이 함께 연습했다. 한 달에 한 번은 전직 프로야구 선수 출신 코치에게 지도받는 행운도 얻었다.

나들목교회 총괄센터장인 황인주 간사는 야구단 단장을 맡았다. 10년째 사회인 야구를 하고 있다는 황 간사는 “야구를 통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보듬자는 김 대표의 제안에 눈이 번쩍 떠지는 느낌이었다”며 “야구는 타석에 10차례 서서 3차례만 안타를 치면 성공인 ‘실패가 많은 종목’이어서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 울림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연습에 참석한 리커버리 야구단. 송지수 인턴기자

선수로 뛰고 있는 자활 대상자들은 야구를 시작하며 변화를 체감한다고 했다. 3루수로 뛰고 있는 임모(29)씨는 2015년 아버지가 별세한 후 삶의 의욕을 잃었다. 3년 가까이 집 안에서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했다. 외출이라곤 새벽에 편의점 다녀오는 게 다였다. 임씨는 “처음에는 캐치볼도 잘하지 못했는데 매주 실력이 조금씩 느는 느낌”이라며 “야구를 통해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10년 전 육군3사관학교에서 장교를 꿈꾸던 박모(32)씨는 극심한 불면증을 겪기 시작한 뒤로 환청이 들리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다. 약이 없으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야구를 시작하면서 복용량이 크게 줄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복용량을 줄이며 저도 의사선생님도 함께 놀라워했다”며 “조마조마와의 경기 때 전 타석 안타를 치면서 야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야구단은 이달 말 후원 계좌 등을 통해 장비를 구입한 후 창단할 예정이다. 바하밥집은 리커버리 야구단을 시작으로 탈북 청년, 보육원 출신 청년, 다문화 여성들로 구성된 팀도 창단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미국 시애틀 등에서 진행되는 노숙인 자활 야구리그인 ‘빌리지 리그’도 자활률이 높다”며 “한국판 빌리지 리그를 통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밝혔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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