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공식 개막한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이 리투아니아에 돌아갔다. 전시장에 조성된 인공해변에서 참가자들이 오페라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관람객이 구경하고 있다.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는 90개 국가관과 79명(팀)의 개인이 경쟁을 벌였다.

“리투아니아관이 어디 있어?”

리투아니아가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황금사자상 수상자로 발표된 11일(현지시간) 오후 6시. 아르세날레 인근 마가치노 거리 후미진 골목으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다. 한국관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관들은 공식 전시장인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두 곳에 있다. 올해로 13번째 참여하는 리투아니아는 번듯한 국가관이 없어 매번 셋방살이하듯 장소를 옮겼다. 관람객 대부분이 프리뷰(8~10일) 때 리투아니아관 구경을 놓친 이유였다. 이날 아침 공식 개막식에서 발표된 수상 소식을 듣고서야 관람객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문 닫는 시간인 7시가 넘어도 발걸음을 돌리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줄 서 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입장을 허용하겠습니다.”

관계자가 나와 이렇게 말하자 환호성이 터졌다.
여러 직업인으로 분장한 자동인형을 전시해 옛 유럽을 관광하는 기분을 주는 벨기에관.

심각한 주제도 짐짓 경쾌하게

‘태양과 바다(Sun & Sea)’라는 주제를 내세운 리투아니아 국가관은 전시장에 모래를 깔고 인공해변을 조성했다.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등 20여명의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해변에 온 것처럼 선탠을 하고, 비치볼과 보드게임을 한다. 관람객들은 중정이 있는 2층에서 이들을 내려다보며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미국 출신인 랠프 루고프 총감독(런던 헤이워드갤러리 관장)이 제시한 올해 비엔날레 주제는 난세를 은유하는 ‘흥미로운 시대를 살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다. ‘난세에 사람으로 살기보다 태평기에 개로 사는 게 낫다(寧太平犬, 不做亂世人)’는 ‘가짜 중국 속담’에서 차용했다.

이에 부합하듯 전시에 참가해 경쟁을 벌이는 미술인들은 난민,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속 등 마이너리티 이슈와 함께 지구온난화 등 생태적 재앙의 문제를 적극 껴안았다. 인류세(人類世)로 불리는 환경재앙의 시대에 다른 생물과 미래에 어떻게 공존할지는 예술가들이 뜨겁게 반응한 화두였던 것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심각한 주제라도 재기 발랄하게 다룰 줄 아는 참가자에게 대체로 상이 돌아갔다. 리투아니아가 그런 예이다. 생태적 재앙과 동식물 멸종 위기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이지만 즐거움과 우울함이 공존하는 방식으로 기발하고 날카롭게 표현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했다.

국가관 특별언급상을 받은 벨기에관도 재미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벨기에관은 구두 수선공, 석공, 방적공 등 전통적 직업을 형상화한 자동인형을 배치해 민속박물관 형식을 취했다. 옛 유럽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마치 관광하는 기분을 준다.

프랑스관·영국관 등엔 장사진

공식 전시장 중 화제의 국가관은 단연 프랑스관이었다. 프리뷰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개장과 동시에 관람객들이 프랑스관으로 달음박질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영국의 권위 있는 터너상을 받은 바 있는 41세 여성 작가 로레 프레보는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심해’라는 제목의 영상 작품과 설치물을 통해 ‘액체적 인간’을 제시하며 다른 종들과의 공존의 문제를 은유했다. 소년의 눈과 물고기의 눈, 문어, 춤추는 사람들, 가면 쓴 남자, 폐허의 유적, 화재로 소실된 파리 노트르담 사원 첨탑, 베니스 전시장 등 파편화된 이미지의 리드미컬한 편집이 초현실적 풍경을 자아내며 놀라운 몰입도를 보여준다. 핀란드관은 기후 변화에 따른 생물 위협의 시대를 주제로 다뤘다.

영국관에도 긴 줄이 이어졌다. 여성 작가 캐시 윌크스는 여성 마네킹을 통해 소외된 자들의 연약함을 환기했다.

미국관은 78세 노장 조각가 마틴 퍼리어를 내세웠다. 미니멀리스트로 분류되는 그는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을 조각으로 풀어놓는 작업 방식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이번에도 야외에 대형 호른을 연상시키는 검은 조각품을 설치해 거대하면서도 여유로운 공간을 연출했다.

올해 처음 국가관을 마련한 가나관은 같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낸 엔 오쿠이의 유작 같은 전시장이 됐다. 올해 작고하기 전 전시 구상에 상당한 조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관의 남화연 작가 전시 공간.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고찰한 작품 ‘반도의 무희’가 영상에 보인다.

밀도 있는 구성 돋보인 한국관

한국관은 예술 감독과 참여 작가 등 4명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주목받았다. 김현진 감독은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의 작품을 여성과 퍼포먼스, 영상이라는 3대 공동 키워드 속에 변주시켰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호기로운 전시 주제로 서구 중심, 남성 중심의 근대사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제인 진 카이젠은 딸이어서 버려진 바리데기 설화를 재해석하며 제주 출신 덴마크 입양아라는 개인적 서사를 한국 근대사와 버무렸다. 남화연은 친일과 월북으로 논쟁적 인물이었던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의 삶의 궤적을 사유하는 신작 영상작품 ‘반도의 무희’ 등을 선보였다. 전시장 밖에는 최승희의 노래 ‘이태리 정원’이 구현돼 좁은 공간의 면적을 확장시켰다. 정은영은 여성국극을 소재로 삼아 남성 중심의 역사 기술에 반기를 들었다. 작품 내용과 전시장 디스플레이에서 예년에 비해 밀도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단국가 작가 특유의 ‘진지함의 과잉’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 보였다.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마약 밀거래 우범지역의 초등학교 콘크리트 담을 그대로 전시장에 가져와 폭력 문제를 고발하는 멕시코 작가 테레사 마르골레스의 작품.

“생존 작가여야 시대를 말할 수 있다”

전시 주제가 보여주듯 루고프 총감독은 예술가들이 실험성을 무기로 이 위급한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고 사고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초청 작가를 모두 생존 작가로 한정한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본전시 참여작가 79명 중 42명(53%)이 여성이다. 124년 역사상 여성 비율이 절반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한국에서 본전시에 초청된 강서경, 아니카 이, 이불 등 3명의 작가도 모두 여성이다.

태국의 핫한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생태 문제를 다뤘다. 캐나다 작가 존 래프만은 ‘접시 위의 물고기 사람’ 같은 기상천외한 애니메이션으로 생태 문제를 풀어냈다. 영국 작가 에드 앳킨스도 ‘샌드위치 속 재료로 떨어지는 아기들’ 같은 기발한 상상력의 영상으로 발길을 붙들어 맸다.

멕시코 여성 작가 테레사 마르골레스는 마약 폭력 지역 초등학교의 총탄이 박힌 콘크리트 벽 자체를 전시장으로 끌고 왔다. 스위스 작가 크리스토프 뷰헬도 2015년 튀니지 난민 800여명이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은 배를 그대로 사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한국의 아니카 이는 기후 문제를, 강서경은 ‘회화의 확장’을 다뤘다. 이불은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에서 철거한 철조망을 가지고 작업해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기념비의 형식을 차용해 신선함이 덜했다. 중국 듀오팀 순 위얀과 펑요우의 ‘채찍 퍼포먼스’ 작품 바로 옆에 놓인 위치도 좋지 않았다. 5분마다 채찍이 괴성을 내며 대리석 의자를 휘갈기는 충격적인 작품은 아르세날레 전시관을 장악했다. 이들은 자르디니 공원 전시장에서도 산업용 로봇이 짐승처럼 포효하는 퍼포먼스 작품으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인 비엔날레에서 그동안 고루한 매체로 여겨졌던 회화 작품이 예년보다 많이 등장한 것도 특징이다.

베니스=글·사진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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