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30대 남성 김난해(가명)씨는 최근 지인 소개로 만난 여성에게서 ‘혹시 저랑 연락하는 게 싫으세요?’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상대가 마음에 들어 잘 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던 김씨로선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김씨는 아침마다 안부 메시지를 보내고 점심식사시간이 끝나면 ‘식사 맛있게 하셨나요?’ 같은 말로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그런데 ‘연락하기 싫으냐’니. 이유인 즉 상대 여성은 그가 이모티콘을 전혀 쓰지 않고 글자로만 메시지를 보내 자신과 의무적으로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좋네요~’처럼 물결 기호 하나 정도 붙이는 수준이었다. 여성이 감정을 강조하는 이모티콘을 쓰면 ‘^^’ 같은 눈웃음을 어렵게 찍어 보냈다. 만난 자리에서는 유쾌하게 잘 웃던 김씨가 휴대전화로 대화할 때는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이 되니 속을 짐작하기 어려웠다고 여성은 말했다. “솔직히 좀 귀찮기도 하고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싫어서 이모티콘을 안 쓰는데 사람들이 자주 오해를 해요.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은 저를 잘 모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문자조합형에서 애니메이션형까지

이모티콘은 얼굴을 볼 수 없는 온라인 환경에서 감정을 쉽고 편리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표현수단이다. 국내에서는 ‘^^’ ‘ㅡㅡ;’처럼 문자와 기호를 조합한 표정을 만들어 사용하다 모바일 메신저 시대로 접어들자 캐릭터 형태로 제작된 이미지 이모티콘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모티콘의 조상격라고 할 수 있는 아스키코드(미국 정보교환용 문자체계)형 이모티콘이 등장한 건 약 140년 전이다. 1881년 3월 미국 풍자잡지 ‘퍽(Puck)’이 기호를 조합해 기쁨, 우울, 무관심, 놀람을 각각 얼굴 형태로 나타냈는데 당시에는 활자를 활용한 예술의 한 형태로 소개됐다. 아스키코드형 이모티콘이 대중적으로 쓰인 계기는 1982년 9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스콜 펠만 교수가 교내 전자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그는 농담일 땐 웃는 얼굴인 ‘:-)’을, 농담이 아닐 땐 ‘:-(’를 붙여 쓰자고 제안했다. 이후 사람들은 입 모양을 바꿔가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 PC통신 보급으로 온라인 채팅이 활발해지면서 우리식 ‘문자 얼굴’이 만들어졌다. 주로 입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눈 모양이 중심을 이뤘다.

이미지 형태 이모티콘의 시초는 1999년 일본 통신사 NTT도코모의 개발자 시게타카 구리타가 만든 이모지(Emoji)다. 처음에는 일본 휴대전화 전용 문자로만 쓰이다가 2000년대 들어 애플과 구글 등 미국 IT 기업이 활용하면서 빠르게 대중화했다. 2015년 전 세계에서 사용된 이모지는 60억건으로 옥스퍼드는 그해 올해의 단어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한 이모지를 선정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카카오톡 출시 당시 6종이던 이모티콘 수가 지난해 6500여개로 늘었고 누적 구매자 수는 지난해 2000만명 넘겼다. 지금의 이모티콘은 단순히 얼굴 표정만 묘사하지 않고 몸짓과 움직임 소리 등을 더한 경우가 주를 이룬다. 상황을 보여주는 이모티콘도 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공감대 넓히는 이모티콘의 힘

현재 이모티콘은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운 기분이나 상황, 취지 등을 보완해주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모티콘은 자칫 기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메시지에 표정을 부여해 대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고 전달하려는 내용을 명확하게 해준다. 특히 글자로 전달하기 어려운 정서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황모(31)씨는 “카카오톡이나 온라인 메신저로 대화할 땐 상대의 얼굴표정이나 어조를 알 수 없잖아요. 사무적인 내용은 거의 상관없지만 상대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상황도 있는데 그럴 때 글자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대화에 한계가 있더라고요. 직장상사 중엔 평소 엄숙한 캐릭터이면서 가끔 농담을 던지는 분이 있는데 그런 경우엔 이모티콘이 없으면 농담과 진담을 구별하기 쉽지 않아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러 해외 연구에서 이모티콘 사용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강화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메시지라도 이모티콘을 사용한 메시지가 더 강한 전달력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서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 조성되는 효과가 있다. 홍익대 대학원 영상학과 정혜진씨는 박사학위 논문 ‘이모티콘의 비언어표현 유형에 따른 공감과 관계몰입’에서 “(이모티콘은)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통신에서 수신자와 발신자 간의 공감 및 관계몰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소셜미디어 분석 회사 퀸틀리가 2017년 사진·동영상 공유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의 프로필 1만9000개와 게시물 550만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모티콘을 사용한 계정은 그렇지 않은 계정보다 상호작용이 평균 4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모티콘은 재치 있는 표현수단인 만큼 상대와의 친밀감이나 대화의 재미를 높여주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거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경성대 대학원 디지털디자인학과 페이카이치앙(裴凱强)씨는 석사학위 논문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 이모티콘의 효율성에 관한 연구’에서 설문 대상 150명 중 가장 많은 56명(37.3%)이 대화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이모티콘을 사용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다음으로는 ‘문자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43명(28.7%), ‘소통을 편하게 하기 위해’ 22명(14.7%) 등의 순이었다. 이 조사에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표현의 이모티콘보다 긍정적인 표현의 이모티콘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지 이모티콘 등장 이후에도 ‘^^’ ‘ㅠㅠ’처럼 간단한 문자조합형 이모티콘은 여전히 자주 쓰이고 있었다. 단순 텍스트보다는 문자 이모티콘, 그림 이모티콘, 움직이는 이모티콘 순으로 더 높은 공감도를 보였다. 표정만 있는 경우보다 움직임이나 상황을 함께 묘사한 이모티콘에 대한 공감도가 더 높았다. 기업들도 소비자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관계 마케팅’에 이모티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까다로운 이모티콘 관계학

이모티콘 대중화 시대라지만 이모티콘 사용을 어려워하거나 귀찮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은 상대에게 대화 의지가 없거나 딱딱한 인상을 주면서 교류가 줄어드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이모(34)씨는 “카톡으로 대화할 땐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간단한 이모티콘이나 ‘ㅎㅎ’ ‘ㅋㅋ’ 같은 표현도 쓰지 않는 사람은 뭔가 기분이 안 좋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자기 할 말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대화 자체도 재미 없어서 평소 연락을 잘 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러 이모티콘 사용을 자제한다는 김모(41)씨는 “상대에게 나 자신이 경박하게 보이거나 대화 내용이 가볍게 여겨지는 게 싫어서”라고 설명했다. 상황에 맞는 이모티콘을 찾아 누르는 게 귀찮다거나 맞춤법을 맞게 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이모티콘을 잘 쓰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모티콘 사용 빈도나 방법은 대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연인과 친구처럼 친한 사람에게 자주 쓰고, 직장상사나 대학교수 등 거리감 있는 사람에게는 자제한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권희진씨는 석사학위 논문 ‘수신자와의 심리적 거리감이 이모티콘 사용 행태에 미치는 영향’에서 “한국과 중국의 사용자들은 공통적으로 회사 상사에게 심리적 거리감이 가장 멀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전했다. 심리적 거리감이 먼 이들에게 감정 표현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이미지형보다 아스키코드형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드러운 대화를 위해 이모티콘을 써보려고 노력하지만 상대가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 경우도 많다. 박모(43)씨는 “과거에는 ‘ㅎ’ 하나로도 미소 짓는 인상을 줬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을 표현하려면 2개 이상 써야 한다고”며 “‘ㅎ’이나 ‘ㅋ’ 하나는 빈정대거나 비웃는 인상을 준다고 하더라”고 했다. 한 직장인은 부하직원과의 메신저 대화 중 ‘ㅎㅎ’을 누르려다 엔터를 잘못 눌러 실수로 ‘ㅎ’을 하나만 썼다가 상대로부터 난데없는 사과를 받기도 했다. 부하직원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상사의 ‘ㅎ’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라는 무언의 질책이었다.

이모티콘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말하려는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도록 돕고 상대와의 친밀감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많은 표현수단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모티콘 사용이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한양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경호씨는 석사학위 논문 ‘이모티콘 이용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노이즈에 따른 비의도적 결과에 관한 연구’에서 이모티콘이 과다하거나 상황모면용으로 쓰일 때, 바쁜 상황 등에서 이모티콘으로 방해를 받을 때에는 이모티콘 사용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관심 없는 상대가 이모티콘을 쓸 때, 맥락과 다르게 이모티콘이 쓰일 때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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