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봉우리 터지는 움직임에, 진달래 철쭉 아우성치는 내음에 취하던 3, 4월이 훌쩍 자취를 감췄다. 세상에 활짝 고개 내밀던 군화(群花)도 초여름을 재촉하는 신록 사이로 숨어들며 봄이 떠나감을 예고한다. 봄날에 이처럼 꽃을 의인화하게 되거나, 혹은 마음속 소중한 그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과 맺힌 기억을 꽃에 투사하려 드는 것은 일부 개인들만의 편집증도 아니고,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닌 듯하다. 미국 듀크대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오늘의 시학(Poetics Today)’ 저널에 실린 논문을 살펴보면 아주 오래전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사람을 꽃으로 투사하려는 흔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성향은 중세를 거쳐 19세기까지 이어져 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꽃들은 대개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하거나 신의 강한 사랑을 받던 요정들이 뜻밖의 죽음 뒤 꽃과 나무로 변한 사연을 갖고 있다.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쫓기다 월계수로 변한 요정 다프네는 서향나무의 이름이기도 하다. 나르시스는 연못의 자기 얼굴을 사랑하다 물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되었고, 젊은 사냥꾼 아도니스를 연모하던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자신의 연인이 사냥 도중 수퇘지에 죽자 숲바람꽃(Anemone)으로 부활시켰다. 아폴로는 좋아하던 미소년 히아킨토와 게임 도중 사고로 그를 죽게 만들자 지중해 연안의 봄꽃 히아신스로 피어나게 했고, 그 아폴로를 연모하던 물의 요정 클뤼티에는 아폴로에게서 버림받자 늘 태양만 바라보는 제비꽃이 되었단다.

이 논문에 따르면 신화 속 인간과 꽃의 결합은 꽃들의 종류에 상관없이 공통된 속성을 갖는다. 한 요정이나 인간이 죽어 땅에 묻힌 자리에, 혹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리에 꽃들이 피어나고 이 꽃들은 죽음에서 솟아오르려는 삶의 모티브를 공통적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신화에서 보이는 꽃의 의인화 근간에는 일종의 ‘우주생물학(cosmo-biology)’이 기초하고 있고 이 우주생물학에서는 꽃과 인간이 죽음이라는 운명을 같이 나누는 연결체가 된다는 것이 논문 저자의 인문학적 주장이다. 이후 중세시대에는 서양의 대표적 꽃 장미, 백합, 제비꽃이 기독교 정신과 그를 실천하는 성자들을 대변하던 시기를 거쳐 르네상스기에는 꽃이 남녀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새로운 상징기능을 부여받는다. 일반인이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갖추게 된 19세기에는 신문이 대중화된 것과 마찬가지로 꽃의 의인화도 인기 작가들에 의해 일반 대중 사이로 유행처럼 퍼져 갔다.

꽃들은 번식을 포함한 식물 사회의 특정한 기능을 담당하지만 이처럼 인간의 문화 속에서도 흥미롭고 복잡한 상징 기능을 해오고 있다고 하니, 한국 사회에서 꽃들이 수행해온 상징 기능 또한 한마디로 압축하기에는 복잡한 성격이었을 것이다. 꽃의 그 상징적 기능에 대한 단상을 초대하는 노래가 떠오른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그날이 오면’ ‘사계’ 등의 노래를 만든 문승현씨가 1981년에 작사 작곡한 ‘오월의 노래’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의 죽음과 꽃의 부활에서 ‘죽음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삶의 모티브’를 우주생물학이란 이름으로 연상해낸 인문학적 상상력이 유달리 감정이입 되는, 봄볕 내리는 날이다.

주영기 (한림대 교수·미디어스쿨학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