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 코앞인데 무얼 할지 밑그림조차 없던 때였다. 지도교수 호출을 받았다. 문을 여니 사무실 한쪽에 입사지원서가 수북했다. OO그룹, △△그룹, □□그룹…. 회사별로 쌓인 지원서들은 허리춤까지 올라왔다. “하고 싶은 게 뭔가. 유학을 갈 것도, 대학원에 갈 것도 아니면 취업을 해야지 않겠나.” 당연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무엇 하나 답을 못했다. 전공과 동떨어지지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정도로 말했던 것 같다. 몇 달 전 금융회사 임원과 저녁식사를 하다 20년도 넘은 일을 들추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얘기는 ‘그 많던 일자리는 어디로 갔을까’로 이어졌다. 일자리가 정말 줄었을까.

일자리 수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지만, 취업자 수 통계를 들여다보면 흐름이 보인다. 1963년 한국의 취업자 수는 756만3000명이었다. 이 가운데 20~39세 취업자는 388만8000명으로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전체 취업자 수는 꾸준히 늘어 지난해 2682만2000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20~39세 취업자 비중은 928만1000명으로 약 35%에 그친다. 큰 줄기를 보면 청년층 취업이 그만큼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한정된 일자리를 획득하고 ‘좁은 문’을 통과한 청년이 그만큼 줄었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는 긴 저출산·고령화로 인구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변수도 있다. 청년층 인구가 감소하면서 구직활동을 하는 모집단 자체가 감소했다. 정년 연장 등으로 직장에서 일하는 기간이 길어진 영향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이에 비례해 전체 취업자 수가 느는 흐름을 보인다. 다만 인구 증가 속도를 일자리 증가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더 큰 걱정거리도 있다. 세계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업들은 ‘나라 밖 노동력’에 눈길을 준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로봇,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그 임원은 스마트폰만 끼고 사는 늦둥이 중학생 아들이 답답해서 얼마 전에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학은커녕 변변한 직업이라도 갖겠느냐.” 돌아온 답이 걸작이다. “어차피 제가 취업을 하려고 할 때쯤이면 일자리가 없을 거예요. 로봇이나 AI가 다 할 텐데요.” 생각해보니 그렇더란다. 그래서 아들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무얼로 먹고 살지 두렵다고 했다.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현실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최근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패스트푸드점, 식당 등에선 무인주문기계(키오스크)가 아르바이트를 대체하고 있다. 로봇과 AI가 일자리의 절반을 뺏는다는 예측도 있다. 마치 ‘의자 뺏기’ 게임처럼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무한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창업의 바다’로 뛰어들라고 한다.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창업 생태계에 피를 돌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다른 쪽에선 ‘실용’에 초점을 맞춘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한다. 기업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창의성과 실용, 어느 장단에 박자를 맞춰야 할까. 청년들은 중장년층의 불안한 진로와 노동환경을 보며 ‘일자리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초·중·고교생은 이런 청년들을 보며 무기력과 불안에 전염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 ‘꿈’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의사, 공무원, 연예인, 운동선수 같은 구체적 직업을 적는 게 현실이다. 노동의 가치, 일자리의 미래 따위는 한가한 소리로 치부된다.

로봇이나 AI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그릴지 알 수 없다. 대신 분명한 것도 있다. 중학생이 고등학교 1~3학년 수학 과정을 ‘선행학습’하고 한창 꿈을 꾸며 건강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학원 셔틀’로 지쳐가는 교육 시스템으로는 답이 없다. 여전히 ‘동물 사진 찍는 사람’을 장래희망으로 품고 있는 아이에게 실용을 얘기해야 하나, 창의성을 강조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학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이다.

김찬희 경제부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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