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북동부 카미실리 인근의 진와르 마을로 통하는 철문에서 한 여성이 소총을 메고 경계를 서고 있다. 여성들만의 마을인 이곳에선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교대로 마을 입구를 지킨다. 진와르는 쿠르드어로 ‘여성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동영상 캡처

시리아와 케냐, 이집트에는 여성들만 사는 마을이 있다. 전쟁과 성폭력을 견디다 못한 여성들이 직접 만든 안식처다.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정절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묻거나, 여성에게 차별적 지위를 강요하는 사회에는 이들이 쉴 곳은 없었다. ‘현대판 아마조네스’를 만든 여성들은 가부장적 사회로부터 도망가는데 그치지 않고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시리아 동북부 카미실리 인근에는 쿠르드어로 ‘여성들의 땅’을 뜻하는 마을 진와르(JINWAR)가 있다. 진와르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성인 여성 16명과 아이 32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성인 남성은 한 명도 없다. 마을 대변인 파트마 에민은 최근 CNN방송 인터뷰에서 “진와르는 여성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여성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없다고 매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했다.

진와르 주민들이 진흙과 벽돌을 쌓아 마을 시설물을 만들고 있다. 주민들은 시설물 대부분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진와르 홈페이지

진와르는 버려진 땅에 지어졌다. 주민들이 직접 진흙을 이기고 벽돌을 쌓아 30여 채의 집과 상가, 수도, 전기 시설까지 설치했다. 곧 수영장도 만들 계획이다. 가부장 문화가 심한 중동에선 여성들이 수영장에 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평화롭기만 한 마을은 아니다. 마을 입구에는 어깨에 소총을 짊어진 여성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진와르 주민들은 대부분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서 가족을 잃었다. 특히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 칼리프 국가(이슬람 신정일치 국가)를 건국하면서 납치와 살해, 성폭행이 일상처럼 벌어졌다.

쿠르드족 여성들은 밖으로는 IS에 맞서고 안으로는 가부장제 문화와 싸우며 스스로 살길을 찾기 시작했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쿠르드여성방위군(YPJ)을 만들어 IS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진와르 역시 쿠르드족 여성단체 자유여성재단이 만든 여성공동체다.

진와르에는 쿠르드족 이외에도 야지디족, 아랍인이 함께 살아간다. 진와르 주민인 야지디족 소녀 베리반(15)은 어머니와 함께 IS에 납치된 적이 있다. IS는 2014년 그녀가 살던 이라크 북부 신자르 지역을 점령했다. IS는 야지디족 남성을 모두 살해하고 여성 3000여명을 끌고 갔다. 야지디족 여성들은 IS 영토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으며 성폭행에 시달렸다.

IS의 세력은 지난해부터 급속도로 줄었다. 하지만 야지디족은 부족으로 돌아오겠다는 여성들에게 IS 조직원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은 두고 오라는 단서를 달았다. 결국 많은 야지디족 여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성폭행의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속출했다.

진와르는 결국 고통받는 여성들을 품기 위해 남성들을 배제했다. 이제 IS가 아니라 중동의 가부장제와 싸운다. 진와르의 벽에는 ‘여성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고 쓰여 있다. 여성들이 스스로 교육받고 힘을 발휘해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냐 삼부루주 학생들이 우모자 여성공동체 내에 설립된 학교에 가고 있다. 우모자 주민들이 만든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잘못된 성차별적 문화를 거부하라고 가르친다. 우모자 유튜브 채널 캡처

아프리카 케냐 동부 삼부루주에는 스와힐리어로 통합을 뜻하는 마을 ‘우모자’가 있다. 1990년 영국군에게 성폭행당한 이 지역 여성 15명이 만든 마을이다. 당시 피해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하고 남편과 공동체로부터 비난에 시달렸다.

케냐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삼부루 지역에서는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여성이 도구처럼 다뤄진다. 교사를 꿈꾸는 리아푸라도 3살 때 어머니와 함께 우모자에 정착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족들이 어린 딸에게 할례를 강요하자 딸을 데리고 도망쳤다.

우모자가 특별한 것은 남성들을 피해 숨어지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삼부루 지역의 여성들에게 조혼과 여성 할례의 문제점과 대처 방법을 가르친다. 공동체 안에 여성 학교를 건설하고 인근 주민들도 이용하게 한다.

덕분에 우모자에는 30여년 동안 꾸준히 새로운 주민들이 합류했다. 지금은 성인 여성 47명과 아이 200명이 함께 살고 있다. 우모자 여성들은 사파리에 야영지를 운영하고 부족의 전통 액세서리를 판매해 생계를 유지한다.

삼부루 지역사회는 여전히 우모자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우모자 주민들이 한밤중에 남성을 마을로 데려오거나, 남성을 만나기 위해 몰래 빠져나간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진다. 심지어 기부금을 노리고 피해자인 척하고 있다는 말도 돈다.

이집트 남부 아스완 지역 알 사마하도 여성들만 사는 마을이다. 1988년 호스니 무바라크 정부가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여성들을 모아 만들었다. 이집트 법은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여성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다. 이혼하면 재산을 공정하게 분할 받기는커녕 맨몸으로 쫓겨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집트 정부는 이런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시세보다 싼 가격에 집과 경작지, 가축을 제공했다. 마을 내에는 학교, 우체국, 병원 등 주요 시설들도 건설했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에드푸에서 67㎞나 떨어진 곳에 마을을 만들고 제대로 된 교통편을 제공하지 않았다. 정부가 일일이 물이나 전기를 제공하지 않으면 땅이 말라 농작물을 키우기도 어려웠다. 정부 정책이 허술해 여성들의 마을이 유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터키 국영라디오방송 테레테(TRT)는 전했다. 여성들이 알 사마하로 숨어들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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