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

목회는 영권(靈權)이다 <6>

김의철 송도가나안교회 목사가 2003년 춘천 가나안교회에서 밤 집회를 인도하고 있다. 김 목사는 목회사명을 회복하고 매일 영성집회를 인도했다.

2000년 12월 강원도 춘천으로 목회지를 옮겼다. 춘천 감사기도원을 개조해 가나안교회를 개척했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이 목회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인본주의를 철저히 버리고 오직 믿음과 영성으로만 목회하겠다.’ 그래서 매일 새벽과 저녁 두 번씩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토지 소유권 문제를 푸는 실마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2년 동안 수원에서 교회를 뺏기며 겪었던 고통에서 나왔다. 그때의 치욕스러운 경험들이 땅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두 쓰인 것이다.

하나님께선 깊은 기도 중에 이런 질문을 하셨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열심히 심방하고 전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내 곁에 머무는 것이다.” 그 말씀이 내 가슴에 박혔다. 그 의미를 깨닫고 한참 동안 울었다.

그 전엔 내가 주의 일을 한다고 하다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이 주님의 일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좋아서, 그냥 주님 곁에 머무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능하면 내 생각대로 앞서서 일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교회에 머물며 기도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그래, 지금까진 세상을 얻기 위해 목회를 했다. 이제부턴 주님을 얻기 위해 하자.’

기도하는데 이런 감동을 주셨다. “지금까지는 네가 교회를 통해 먹고 살려고 했다. 지금부터는 교회를 위해 죽으라.” 그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교회를 위해 죽으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기도하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 제가 40일 금식기도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십시오.” 주께서 큰 감동을 주셔서 금식 작정을 했다. 그러나 막상 40일간 금식할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금식하다 죽는 사람도 있었고 정신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 제가 금식하다가 죽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의 두 자녀와 아내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의 아들딸, 아내는 너와의 관계 이전에 나의 아들딸이다. 왜 걱정하느냐.” “춘천의 교회를 이렇게 개척했는데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너의 교회가 아니라 나의 교회다. 네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이 편안해졌고 2001년 9월 1일부터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주님, 금식기도를 시작할 때 고통스럽지 않고 들것에 실려 다니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4일째 되는 날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아프고 창자가 꼬였다. 속에선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럴수록 강단 앞에 나아가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고통을 이길 수 있게 해주세요.”

기도가 끝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냄새나던 입 안쪽에서 달콤한 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침을 삼키니 머리부터 모든 고통이 스스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고통이 줄어들었다. 그 은혜를 안고 금식하며 매일 두 번씩 예배를 인도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지팡이도 짚지 않고 매일 예배를 인도하며 40일 금식기도를 마쳤다.

금식이 끝나자 주님이 물으셨다. “너 왜 금식했느냐.” “주님을 얻기 위해서 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다 버리라!”

그때 나는 수원 사건을 마무리하고 약간의 돈이 있었다. 그렇게 의지했던 돈, 그것 없으면 못살 것으로 생각했던 돈을 개척교회에 줘버렸다. 그리고 나니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40세가 넘어 무일푼 빈털터리가 돼 주님만 바라보는 훈련이 시작됐다. 주님은 금식 이후 1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빈손으로 당신만 바라보며 살게 하셨다.

정해진 수입은 없었다. 오직 주님이 주시면 있고, 안 주시면 없는 상황이 됐다. 주께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시면 아이들 학교도 보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특히 생활비와 학비가 필요할 때면 가슴이 저렸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부탁하거나 빌리지도 않았다. 어차피 없으니 그냥 기도만 했다. 그러면 꼭 필요한 돈만 주셨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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