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인가, 새로운 패러다임인가. 최근 ‘현대금융이론’(Modern Monetary Theory·MMT)을 둘러싸고 경제학자 사이에 설전(舌戰)이 벌어졌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 등 주류 경제학자들이 ‘반대파’의 선봉에 섰다. 이들은 MMT를 “현대적 허튼소리(nonsense)”라고 비판한다. 반대편에는 주류에 대항하는 이른바 ‘반란군’이 서 있다. 대표적 ‘MMT 학파’인 스테파니 켈튼 뉴욕주립대 교수는 “지금까지의 경제학 상식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일 양국 정치인과 관료들도 ‘찬반’으로 갈리고 있다. 미국 정계와 MMT 추종자들은 ‘모범사례’로 일본을 지목한다. 반면 일본 재무성과 중앙은행은 MMT를 ‘이단’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MMT 성공 사례가 아니다”며 부인하고 있다. 대체 MMT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난리일까.

“윤전기를 마음껏 돌려라”

MMT는 ‘정부가 아무리 돈을 많이 찍어내도 재정 파탄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정부는) 더 빚을 내고 더 돈을 써도 괜찮다’는 이론이다. 정부의 세수와 지출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전통적 ‘균형 예산’ 개념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미국 달러나 일본 엔처럼 전 세계에 통용되는 ‘기축통화’ 국가에 적용되는 논리다.

MMT 옹호론자들은 “정부가 돈을 찍어내 인프라·복지 등에 투입할수록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축통화국은) 재정 적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정부 지출을 늘리라”고 말한다. 윤전기를 돌려 화폐를 마구 찍어내도 괜찮다는 것이다.

정말 그래도 될까. 이런 의구심이 ‘MMT 논쟁’의 출발점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재정적자를 심각한 ‘위험 요소’로 규정한다. 정부가 돈을 무한정 찍어내면 하이퍼인플레이션(급격한 물가 인상)이 발생하고 화폐 가치가 휴지조각보다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인플레이션으로 휘청거리는 아르헨티나 짐바브웨 베네수엘라 등이 대표 사례다. 국가가 무분별한 지출을 일삼으면 경제 위기가 왔을 때 ‘파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신용경색이 일어나 부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MMT 전도사’들은 이런 고정관념을 부정한다. 정부가 돈을 찍어내더라도 ‘저물가, 저금리’ 상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켈튼 교수는 지난 3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배에 가깝지만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나 기준금리 인상 같은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MMT는 모든 점에서 기존 경제학과 다르다”고 말했다.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는 1980년 52%에서 2017년 238%까지 치솟았다. 그런데도 물가상승률은 몇 년째 2% 이하를 맴돌고 있다. 기준금리도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일본 내부에서도 MMT 옹호론이 들썩인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료이자 경제평론가인 나카노 다케시는 최근 자민당 의원 10여명을 대상으로 한 ‘MMT 강연회’에서 “일본이나 미국처럼 (기축)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정부의 재정은 파탄나지 않는다. 설령 일본 정부의 빚이 5000조엔(약 5경4264조원)이 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단’인가 ‘현실’인가

‘MMT 이론’이 확산되자 주류 학계와 경제기관들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재정적자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필 암스트롱 영국 사우샘프턴 솔렌트대 교수도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MMT 옹호론자들은 다양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MMT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도 반대 입장을 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MMT는) 재정적자를 고려하지 않는 극단적 주장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일본 재무성은 지난달 17일 세계적 경제학자 17명의 반대 견해가 담긴 ‘반박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MMT가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일본은 사실상 MMT와 유사한 재정적자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재정적자는 지난해 8700억 달러에 이르렀다. 2020년엔 1조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국채 금리는 연 3% 아래에 머물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달러 공급) 과정에서도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레 저물가 기조가 자리 잡았다. 돈을 풀어도 물가와 금리는 오르지 않은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가부채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다지 높지 않다. 재정적자가 늘어나도 성장이 지속된다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MMT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반가운 이론이다. 힘들게 세금을 걷어 표심을 잃는 대신 화폐를 펑펑 찍어내면 된다. 아베 신조 정부는 소비세율 인상(8%→10%) 시점을 두 번이나 연기한 끝에 오는 10월로 잡았지만,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아베 정부 입장에서 MMT는 재정적자 해소 대신 성장을 추구한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근거이기도 하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이단 경제이론’의 실험장으로 지적된 만큼 일본은행도 처한 상황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물론 ‘청구서’가 언젠가 날아올 수밖에 없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미국은 2011년과 2013년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에 휩싸였었다. 아무리 기축통화 국가라 해도 재정·통화 정책의 신뢰를 잃으면 국채·통화 가치 하락을 피할 수 없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재정 지출과 국가 장래에 대한 불안이 결과적으로 기업·소비 활동을 갉아먹으며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이라며 “MMT가 무분별하게 이용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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