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2017년 발표한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 등장하는 기사단장은 특이한 존재다. ‘기사단장’이라는 명칭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따온 것이지만 소설 속 유명 화가의 그림에서 빠져나온 기사단장은 실체가 없다. 겉으로 보기엔 흰옷을 입은, 일본 역사 속의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는 스스로를 사람이 아닌 ‘이데아’라고 칭한다. 상황에 따라 외양을 바꿀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볼 수 없고, 몇몇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지난 주말 들려온 하루키의 근황을 읽으며 그의 작품 속 기사단장을 떠올렸다. 하루키는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 6월호에 실린 에세이에서 자신의 부친이 제국주의 시절 징병된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과거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키는 부친이 1938년 20세에 징병돼 중국에 배치됐고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소속 부대가 중국에서 포로를 참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군도(軍刀)로 사람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광경은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낙인으로 찍혔다”고 털어놨다. “아무리 불쾌한,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것이 있더라도 사람은 이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며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것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과거사의 잘못을 외면하거나 부인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도 피아니스트였던 유명 화가의 동생이 징병돼 중국에서 상관 명령에 포로를 참수하는 상황이 그려진다. 난징(南京)대학살 당시 “일본군이 항복한 병사와 시민 수십만명을 죽였다”는 표현도 함께 나온다. 하루키는 이 때문에 일본 극우세력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에세이 마지막 부분에서 하루키는 “우리는 광대한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물방울 중 이름 모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면서도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한 방울 빗물의 역사가 있어서, 그것을(역사를) 이어 나가야 한다는 한 방울 빗물의 책무가 있다”고 했다. 현재를 사는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도 올바른 역사를 지키는 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게다.

그의 에세이를 읽은 후 다시 펼쳐본 ‘기사단장 죽이기’ 속 기사단장은 ‘이데아’가 아닌 ‘메타포’로 이해됐다. 일본의 숨기고 싶은 과거, 군국주의와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의 동맹을 가리키는 은유로 읽혔다. 소설 속에서 기사단장은 “나를 죽여 달라”고 한다. 자신을 죽여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고민 끝에 한 소녀를 지키기 위해 기사단장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캄캄한 암흑과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던 길을 헤맨 끝에 소녀를 구한다. 일본의 현재(주인공)가 과거(기사단장)를 딛고 일어서야만 미래(실종된 소녀)를 구할 수 있다는 작가의 고민이 ‘기사단장 죽이기’의 얼개에 숨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일본인이 현대사에서 가장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군국주의라면 한국의 현대사에서 많은 국민이 아프게 느끼는 사실 중 하나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일 것이다. 과거 정치권 일부 인사들은 5·18민주화운동 진압을 정당화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그날의 진실이 밝혀진 지금도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여전히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비하하거나 북한과의 연관성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심지어 익명성에 기대 피해자들을 희화화하는 움직임까지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내밀한 개인사를 공개하며 현대사의 부끄러움을 되새겨보는 하루키의 모습이 한반도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인상적이다. 돌아오는 5월 18일은 희생자들을 조용히 추모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참회하지는 못할망정 아픈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꼴사나운 모습과는 이제 작별하고 싶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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