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8) 마지못해 집어든 성경의 매력에 ‘흠뻑’

병상에 누워 세상만사 허탄할 때 성경 속 잠언 읽어 보라는 아내… 중국 고전과 일맥상통해 큰 흥미

한 여학생이 1969년 서울시내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추첨을 하고 있다. 여운학 장로는 당시 탐구당 부사장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만들었다. 국가기록원 제공

탐구당 사장은 젊은 시절 은행원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제작 일체를 맡기며 집까지 사줬다.

민교사 시절 검인정교과서 제작을 경험하며 새교육 과정의 핵심을 파악한 나는 몸을 던져 일했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각 분야의 엘리트들과 함께 여관과 회사를 오가며 교과서 제작에 집중했다.

특히 지리부도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성공했다. 경쟁사들은 제도사를 써서 가편집본을 제출했다. 반면 우리는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고급 필경사들에게 갑절의 노임을 지불해 정식으로 인쇄된 교과서처럼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고 정확하게 지리부도 원판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이화여대 회화과 엘리트 학생들을 합숙시키며 고급 인쇄물처럼 특수 색연필로 색상을 입혔다. 특히 부록의 색인은 당대 최고의 필경사를 동원해 로마자로 직접 쓰게 했다. 한마디로 고급 인쇄물처럼 만든 것이다. 시각적으로 심사관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도록 작전을 짠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여 출판사의 교과서 중 7개가 채택됐는데, 탐구당의 지리부도가 포함됐다. 당시 지리부도 한 권만 채택돼도 출판사 빚을 모두 청산할 정도로 큰 수익이 났다.

50여명의 편집 엘리트들이 동원된 민중서관과 나와 임시편집자 10여명이 달라붙은 탐구당의 검인정교과서 합격 권수는 막상막하였다. 탐구당이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 않았는지 의심해 출판사들이 비밀리에 조사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물론 흠을 찾을 순 없었다.

그 후 탐구당은 ‘조선왕조실록’ 전 49권 번각 발행을 비롯해 승정원일기 등 한국학 연구에 도움 되는 책을 발행했다. 각종 대학교재와 ‘탐구신서’ 시리즈도 발행했다.

이렇게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던 1973년 어느 날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병원에 가보니 척추디스크라고 했다. 영락없이 병상에 눕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40세였다. 두려울 것 없이 달리던 나의 전성기에 병마가 제동을 건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묵묵히 지켜보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몸의 약점을 통해 영혼을 일깨우는 ‘비상벨’을 울리신 것이었다.

병상에 누워 전화로 일 처리를 하니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그때까지 나는 불교 신앙에 푹 빠져 ‘반야심경’은 통째로 암송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아파 누워있으니 세상만사가 다 허탄하게만 느껴졌다.

하루는 교회에 다니던 아내가 말했다. “여기 성경 속에 잠언을 읽으면 참 재미있어요.” 아내가 건네준 성경책을 폈다. 잠언을 읽어보니 정말이었다. 재미를 넘는 매력이 있었다. 내용에 흠뻑 빠져들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사랑방에서 즐겨 암송했던 ‘중용’ ‘대학’의 내용과 많이 통했기 때문이다.

잠언을 읽으면서 성경책 여백에 암송하던 중국 고전 문구까지 써넣었다. 이를테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좋은 일을 행한 집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고) ‘적불선지가 필유여앙’(積不善之家 必有如殃, 나쁜 일을 행한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온다)는 것도 일맥상통했다.

전도서를 읽으니 이번엔 암송하던 반야심경과 통했다. ‘헛되고 헛되다’는 말씀은 반야심경의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 없다는 것은 곧 있다는 것이요 있다는 것은 곧 없다는 것이다)과 통했다.

시편 읽기에 들어갔는데, 그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야, 깊은 뜻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성경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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