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 총장을 역임한 존 헤네시(오른쪽)가 2017년 축소명령집합컴퓨터(RISC) 아키텍처로 컴퓨터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한 뒤 이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공동 수상자인 데이비드 패터슨. 유튜브 캡처

인터넷 서점에서 ‘리더십’이란 키워드를 검색하면 4478권의 도서가 뜬다. 여기에 한 전직 대학 총장의 리더십 관련 책을 추가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미국 스탠퍼드대 총장으로 16년간 재임한 존 헤네시(67)의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Leading Matters)’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교수와 기업가로 살면서 몸소 배운 교훈을 실증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리더십의 조건을 10가지로 집약해 그에 대한 나의 생각과 중요한 순간마다 그 조건을 어떻게 믿고 의지했는지 들려주겠다”고 한다. 2000년 스탠퍼드대 총장으로 임명된 헤네시는 재직 중 벤처기업 ‘밉스 컴퓨터 시스템스’를 설립, 컴퓨터 칩의 99%에 쓰이는 축소명령집합컴퓨터(RISC) 아키텍처를 개발했고 이 공로로 컴퓨터 업계의 노벨상인 튜링상을 수상했다.

구글 창립자인 세르게이 브린 등 많은 제자를 길렀고 구글과 시스코시스템스 등의 이사로 활동하며 디지털 혁명에 공헌했다. 그래서 별명이 ‘실리콘 밸리의 대부’다. 또 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대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켰다. 현재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이사회 의장이자 장학재단 나이트-헤네시 대표다. 헤네시는 책에서 자신의 리더십론과 인간 성장론을 10가지 원칙으로 제시한다.


역사 속 리더십을 꾸준히 공부한 그는 자신의 상황에 위인들의 리더십을 적용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다. 자기 경험담을 생생히 들려주면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구체적인 원칙을 도출한다. ‘겸손’ ‘진정성’ ‘봉사’ ‘공감’은 리더십의 토대를 이루는 4가지 원칙이다. ‘용기’는 이를 실천하게 해주는 원칙이다. 변화에는 ‘협업’ ‘혁신’ ‘호기심’ ‘스토리텔링’ ‘유산’의 원칙이 적용된다.

제1원칙인 겸손은 자신의 약점을 끊임없이 보완해 성장할 수 있게 한다.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데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네시는 겸손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총장 시절 그는 기숙사를 자주 방문해 거의 모든 신입생을 만났다. 대화의 소재는 어떤 모양의 팬티를 입어야 하느냐부터 이라크 전쟁이 정당한지에 대한 토론까지 다양했다. 그는 이를 통해 학교의 핵심 자산이자 고객인 학생들과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았다. 그는 어떤 관계나 일이든 진정성을 가지고 임할 때 헌신할 수 있고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본인의 경험에 비춰 리더의 역할이 커질수록 봉사의 역할도 커진다고 한다. 용기는 과거 ‘용기 근육’을 몇 번이나 사용하고 강화했는지에 달렸다. 헤네시는 밉스의 대규모 해고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시 대학 구조조정, 뉴욕 캠퍼스 실패 등의 과정에서 용기를 냈다. 그는 어려울수록 양질의 교육을 통해 공익에 기여한다는 대학의 핵심 사명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금융 위기 때는 이에 근거해 학자금을 유지하는 대신 행정 인력을 축소했다. 9·11 테러 후에는 이렇게 연설했다. “아무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이를 너그럽게 사랑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정의로움을 믿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고 온 나라의 상처를 보듬읍시다.” 용기는 복수가 아니라 연민으로 행동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링컨의 연설을 인용한 것이었다.

뉴욕 캠퍼스 추진 과정에서 시 측이 일정 규모의 학생 수 보장을 요구했다. 그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스탠퍼드 교수진이 교수 채용과 학생 입학을 관리한다는 원칙이 흔들릴 수 있었다. 헤네시는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관계자들을 설득해 계획을 백지화했다. 리더는 리스크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한다. 성장을 위해서는 평생 배우고, 협업하고, 무엇을 남길지 고민해야 한다.

스탠퍼드대가 스타트업 성공의 대명사가 되는 데에는 헤네시의 철학이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창업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좋은 기업은 기술이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 뭔가 발명했다면 그것이 상용화되도록 하는 것이 대학의 도덕적 의무라고 믿는다. 스탠퍼드대가 기업가가 되는 꿈을 추구하도록 독려했기 때문에 대학 기반 기업가들의 집결지가 됐다고 한다.

“당신을 성장시켜줄 태도와 습관은 무엇인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책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준다. 학계, 업계, 시민사회계, 정부를 아우르는 커리어에서 그가 배우고 기른 지혜와 통찰이 책에 잘 녹아 있다. 그의 사려 깊은 판단과 겸손한 행동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콘돌리자 라이스 등의 일화도 재미있다. 미국 사례 중심이라는 게 조금 아쉽지만 성장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책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