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루빈스타인은 참 예뻐요’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눈과 조각 같은 코, 우아한 손을 가진 루빈스타인이 등장한다. 이처럼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의 매력을 모른다. 그녀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수염 난 여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눈에는 덥수룩한 수염만 보일 뿐이다. 드디어 그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파블로프가 나타난다. 그는 코끼리 남자로 불릴 정도로 유난히 긴 코를 가진 남자다. 두 사람은 수염과 코 대신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며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다정하게 걷는 그림에는 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던 신사도, 줄넘기 하던 아이들도, 도둑을 쫓던 경찰도 모두 할 일을 멈춘 채 수염과 긴 코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 나의 특징은 여드름이었다. 생김새가 아닌 왜 하필 여드름이냐고 따져도 별수 없다. 고2 때 시작해 이십 년 동안 돋아나던 여드름은 이목구비와 마찬가지로 얼굴의 한 부분이었으니까. “뭐가 이렇게 잔뜩 났어?” “여드름만 아니면 훨씬 나을 텐데.” 이런 소리를 듣다 보니 누가 나를 쳐다보면 또 여드름 얘기를 하나 싶어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사춘기 아들 얼굴에 뭐라도 돋으면 아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이 남긴 자국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

얼마 전 길에서 본 아이가 생각난다.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이 하나가 학원 승합차에서 내려 내 옆에 섰다. 아이의 얼굴은 각질로 뒤덮여 있고 손등도 거칠었다. 한눈에 봐도 심한 아토피 피부염이다.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굳더니 멈춰서서 신호등만 쳐다보는 것이다. 또래 아이들이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옛일이 떠올라 무례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아이들을 흘겨봤다. 속으로 ‘그만 좀 봐라’ 중얼거리다 퍼뜩 깨달았다. 나의 시선도 줄곧 아이의 피부에 머물렀다는 걸.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작동하는 망각에 쓴웃음이 났다. 신호가 바뀌자 아이가 쏜살같이 길을 건넜다. 제발 나의 무신경한 시선이 상처로 남지 않길 바라며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쫓았다.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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