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 대홍수가 결정타였다. 나무를 베어내고 개간한 산과 숲은 빗물을 머금지 못했다. 골짜기마다 급류가 쏟아져 내렸고 하천은 범람했다. 북한 땅의 75%가 수해를 입은 ‘100년 만의 대홍수’였다. 수확을 앞둔 작물들이 물에 잠겨 썩어나갔고 수해를 피했어도 쭉정이만 남았다. 평양에서 멀고 낙후된 지역부터 정기 배급이 중단됐다.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굶주린 주민들은 산으로 올라가 나무껍질을 벗겨 먹기 시작했다. 접경지역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넜다.

탈북자들의 증언과 비정부기구(NGO)들의 조사에 따르면 그해 가을부터 환자와 아동, 여성을 중심으로 아사자가 발생했다. 95년 봄이 되자 얼마 없던 식량도 바닥을 드러냈다. 평양의 쌀값이 급등했다. 극소수 권력층을 제외하곤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했다.

95년부터 98년까지 최소 30만명, 최대 3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은 이렇게 시작됐다. 굶주림은 질병으로, 범죄로 이어졌다. 인륜도 무너졌다. 아이들은 버려지거나 팔려나갔고 노인들, 환자들은 무정하게 버림받았다. 굶주리다 못해 인육을 먹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전쟁보다 더한 지옥의 행군이었다. 52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20만명이 중국으로 탈출했다.

북한 주민들이 ‘세기의 비극’으로 고통받는 동안 남한은 풍요를 구가하고 있었다.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장기호황이 이어졌고 풍요를 상징하는 X세대, 오렌지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눈앞에 뒀다. 북한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식량난’이라는 세 글자가 북한 땅에서 실제로 뭘 의미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95년 들어 북한이 일본에 식량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김영삼정부도 북한 쌀 지원에 나섰다. 남북은 중국 베이징에서 회동을 하고 1차로 쌀 15만t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해 6월 쌀 2000t을 실은 씨아펙스호의 인공기 게양, 8월 삼선비너스호 억류 등으로 여론은 분열됐다. 1차 쌀 지원은 10월 마무리됐지만 김영삼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으로 돌아섰고 더 이상의 식량 지원은 없었다. 북한 땅은 96년부터 98년까지 3년간 생지옥으로 변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올해 북한의 식량 사정이 최근 10년 가운데 최악이라며 136만t의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키로 하고 미국 협조까지 구해 왔다. 하지만 북한은 찬물을 끼얹듯 단거리 미사일을 쐈다. 북한 쌀 지원을 둘러싼 여론은 더 극단적으로 분열됐다. 95년과 판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 정권의 행태를 보면 대북 쌀 지원에 반대하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북한 정권에는 ‘인민’의 생명보다 이념과 체제, 정권의 안위가 더 중요해 보인다. 선의의 도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몽니를 부리는 모습도 여전하다. 북한 정권이 앞으로 쌀 지원을 받으면서 미사일 발사보다 더한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북한 정권이 아무리 무능하고 불의해도 이를 인도적 지원과 연계해선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은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그 목적을 충실히 보장하기 위한 조건이 아닌 그 어떤 조건도 달아서는 안 된다.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적군도 치료하는 게 인도주의다.

대북 사업을 오랫동안 해온 한 사역자의 눈물을 본 적이 있다. 고난의 행군 기간 지척에서 동포들이 굶어 죽는데도 외면하거나 둔감했던 과거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었다. 그는 동포들의 고난을 외면한 한국교회가 훗날 그들에게 무슨 낯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독일 통일 전 서독교회는 동서 냉전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교회와 주민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전했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로 서로를 위협하고 세계 각지에서 대리전을 벌이던 당시 동독은 소련의 속국과 다름없었지만 이념과 체제보다 사랑이 먼저였다. 이렇게 쌓은 신뢰와 동포애가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이념적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면 북한 쌀 지원에 반대할 이유는 부지기수다. 이념이 중요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도적 지원은 무조건적 사랑의 발로다. 사랑은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넘는 절대적 가치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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