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설 같은 명절에 엄마 따라 장에 가서 나일론 잠바나 바지 얻어 입는 기쁨이 컸습니다. 쌀 팔고 콩 팔아 자식들 옷 사주느라 엄마는 고생이 여간 아니었을 텐데. 그 바지 ‘자크’가 그만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자크’를 내리고 오줌을 누려는데 내려가질 않는 거였지요. 별수 없이 바지를 통째로 내리고 볼일을 봐야 했고, 고개를 접어 내려다보니 ‘자크’ 이 몇 개가 빠져 있었던 겁니다. 집에 와서 구시렁거리니까 엄마는 별 설명 없이 이 빠진 부분을 실로 아예 꿰매버렸습니다. 제법 맘에 든 옷이라 상심이 컸지요. ‘자크’의 품질이 시원찮던 시절에 종종 생기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작동되라고 ‘자크’에 양초를 바르기도 했고.

헝겊 오라기에 서로 이가 맞는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박아 고리를 밀고 당겨서 열고 잠글 수 있도록 만든 것. ‘지퍼’입니다. 흔히 ‘자크’라고 하는데 자크는 표준어가 아닙니다. 지퍼를 생산한 회사(‘JACK’) 이름이지요. 제품명인 ‘봉고’가 승합차 일반으로 불리는 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초코파이’, 애들이 좋아하는 ‘스팸’(예전에 광고가 하도 많이 나와 지금은 불필요한 메일이란 뜻으로도 쓰임) 등도 고유명사가 일반명사처럼 불리는 예입니다. 가방이나 지갑, 구두 등에 쓰이는 지퍼도 제화사가 목 높은 구두에 이걸 달고 붙인 이름입니다. 올리고 내릴 때 ‘지~이프 업’이란 소리가 나서 이름을 지었다는 말도 있는데….

입이 싸서 말을 잘 퍼뜨리거나 험한 말을 일삼는 사람에게 입 닫으라는 뜻으로 ‘자크를 채운다’고 하지요. 요즘 말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지퍼를 채워야 할까 봅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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