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목사의 전도군사학교] 복음은 십자가며 핍박은 당연… 심하게 거절할수록 빨리 예수 믿어

<5> 거절을 두려워 말라

이수훈 당진동일교회 목사가 1997년 당진의 교회에서 두 팔을 벌려 중보기도하고 있다. 이 목사는 사계절 한 벌의 양복만으로 전도현장을 누볐다. 당진동일교회 제공

전도는 기술이다. 전도현장을 계속 다니다 보면 영적 대처방법과 사람 대하는 기법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다. 제일 힘든 것은 사람과의 벽이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 대화를 터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열게 한 뒤 내가 기대하는 복음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면 교회에 나오게 된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은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신앙 없는 분들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께 대항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교회 한번 다녀보실래요?” “제가 나가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전도 현장을 다니다 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런 행운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은 대항하거나 불쾌하게 반응했다. “저리 꺼지라고.” “재수 없게 뭐라는 거야.” 무관심하거나 비웃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일상적으로 거절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져나갔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전도현장에서 미움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비웃음을 당하는 날에는 창피하고 참혹하며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많았다.

어느 때부터인지 거절당하는 것에도 익숙해져 갔다. ‘사도들이 내 형편보다 심하면 심했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매를 맞고 갇히고 죽임을 당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는데, 고작 거절당하는 것으로 주눅 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위로도 하고 다짐도 하면서 다녔다. 사람들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거절을 즐기게 됐다. ‘복음은 십자가이며 핍박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불같이 달려드는 사람들도 즐기게 됐다.

신비로운 일은 심하게 대든 분들이 누구보다 빨리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 갈게유.” 22년 전 곧 가겠다고 약속한 분은 아직 꿈쩍도 안 한다. 하지만 얼굴 붉히며 대항했던 분들은 이미 직분을 받았다.

500여 세대 아파트가 당진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아내와 함께 101동 101호부터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101호 초인종을 눌렀다. 분명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반응이 없었다. 초인종을 누르다가 쿵쿵 문까지 두드렸다. 무례한 행위였지만 어차피 복음에 대항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기가 생겼다.

갑자기 문이 확 열렸다. 깜짝 놀랐다. 주부가 긴 머리를 풀고 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왔다. “누군데 아침부터 남의 집 문을 자기 집처럼 맘대로 두드리는 거야.” 날카로웠다. “미안합니다. 오죽 급하면 그랬겠습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했네요. 제가 목사입니다. 이 가정을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와 그랬습니다. 기분 나빠도 차 한 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뻔뻔스러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반응이 더 웃겼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커피를 내왔다. 그분은 그 후 친정어머니와 동생까지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이처럼 거절은 전도자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당연한 일임을 인정하고 나갈 때 마음도 편해지고 소득도 있게 된다.

하나님은 종종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위로해주셨다. 시내 전도를 다니다 보면 식사를 못 하고 다닐 때가 많았다. 혼자 식당에 앉아 식사하는 것도 그렇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아끼며 다니다 보면 식사 때를 잊어버렸다. 한 주에 두 번은 꼭 들렀던 곳이 있었다. 성결교회에 출석하는 김성환 장로님의 양복점이었다. 장로님은 늘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식사나 다방 커피를 시켜주셨다. 양복점 소파에 앉아 섬김을 받을 때마다 죄송하고 감사했다.

당진 시내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장로님 만나면 개척 교회가 진행되는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형님처럼 포근한 김 장로님께 외롭고 고달픈 넋두리를 하면 쌓여가는 짐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소천하셨지만, 양복점이 있던 그 골목길을 지날 때면 장로님이 거기 계신 것처럼 그립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위로자로 내 곁에 계셨던 장로님이 더 많이 그리워진다. 젖은 몸으로 뛰어 들어가면 수건을 내주시며 닦아주시던 그 인자하신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교회를 개척하고 나서 겨울 양복 하나로 지냈다. 삶이 곤고했던 그 시절 그냥 예수님을 생각하면 늘 죄송하고 미안해서 그렇게 지냈다.

무더운 여름 길바닥은 불같았다. 땀이 차서 신발이 질컥거렸고 오후가 되면 허옇게 소금기가 배어났다. 그래도 양복을 벗을 수 없었다. ‘전도자니까’ 하는 알 수 없는 오기가 내면에서 일어났다.

전도하다가 오후가 되면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체력의 한계선을 느꼈다. 이러다 쓰러지겠구나 하다가도 마음 한편에서는 희열이 밀려오곤 했다. 아무 공로 없이 은혜를 받았는데 예수님을 위해 이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전도를 하다 보면 자정 넘어 집에 돌아올 때가 많았다. 논길을 걸으면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은 참 아름다웠다. 뭔지 모를 뭉클한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정말 부끄럽지만, 감히 예수님 흔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늘 받기만 하고 살았던 내가 이제 주님을 위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감사했다.

매일 거절당하는 것이 일상이 돼 어느 때부턴가 거절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낯선 사람을 향해 너무도 담대하게 덤벼들고 있음을 알게 됐다. 정말 복음의 담력이 생겨난 것이다.
이수훈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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