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특징은 기후변화와 생태적 재앙을 다룬 작품이 많다는 것
한국 사회도 미술계도 아직은 생태문제에 큰 관심이 없어
탄소배출 감소에 ‘내가 손해, 기업이 손해’라는 생각 말아야


그것은 전주곡이었을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날씨는 궂었다. ‘빛의 미술’로 불리는 16세기 ‘베니스 화파’를 탄생시킨 뜨거운 태양, 물의 도시에 대한 기대는 깨졌다. 우중충한 하늘과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가 우리를 맞았다. 현지인들은 두꺼운 모직 재킷과 파카 차림이었다. 날씨를 점검하지 못한 불찰도 있지만 5월에 13∼14도라니. 62년 만의 최저기온이라고 했다. 베네치아를 덮친 이상기온 탓에 우리는 오들오들 떨며 취재해야 했다.

2019년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출장을 다녀왔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전위적인 미술 실험의 현장이다. 예술가로서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는 예민한 촉수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올해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리투아니아에 돌아갔다. “기후변화 문제를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롭게 다뤘다”는 평가를 보니 베네치아의 이상기온은 수상을 알리는 복선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투아니아는 전시장에 모래를 깔아 인공 해변을 조성했다. 퍼포먼스 참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선크림을 바르고, 잡담하고, 카드놀이를 했다. 행복한 해변 풍경을 연출한 뒤 관람객이 중정이 있는 2층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아리아는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모던 오페라의 형식을 취한 리투아니아관의 전시 ‘태양과 바다(Sun & Sea)’는 “당신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데 이 해변의 행복을 마냥 즐길 수 있는 거 같냐”는 비아냥거림으로 들렸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기후 변화와 생태적 재앙을 다루는 작품이 두드러지게 많은 게 특징이다.

귀국한 나를 맞은 건 미세먼지의 서울이다. 초고속 신선배송 전쟁의 결과물로 쏟아지는 과잉 포장재의 문화다. 아직 어떤 규제도 마련되지 않아 커피 전문점에서 여전히 하루에 몇 개쯤은 사용하게 되는 빨대 문화다.

월간미술 2월호 특집으로 ‘동시대 한국미술의 현안’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구할 때 ‘생태주의적 예술 감수성’을 제안한 바 있다. 지난해 신문에서 본 사진 한 장의 충격이 커서다. 스페인 남부 해안가에서 죽은 채 발견된 고래의 배 속에서 무려 29㎏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 인간이 버린 빨대가 콧구멍에 끼어 호흡이 곤란한 바다거북 영상도 봤다.

인류세(人類世)로 불리는 환경재앙 시대를 맞아 인류가 다른 생물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는 절박한 과제다. 이는 미세먼지의 공포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그렇듯 한국미술계도 아직 생태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베니스비엔날레가 입증하듯 세계는 생태 문제를 향해 안테나를 곧추세우고 있다.

미국 생태주의 철학자 존 B 캅 주니어는 저서 ‘지구를 구하는 열 가지 생각’에서 ‘생태문명’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인간 경제는 자연 경제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간 경제 역시 제한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국 책임론과 관련해 존 B 캅 주니어가 내린 평가는 새겨들을 만하다. 그는 중국이 생태문명을 도입하고 실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구를 구하는 열 가지 생각’의 번역자이자 생태문명 연구자인 한윤정씨는 우리가 몰랐던 중국의 노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중국에서 생태문명은 2007년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에 의해 환경정책의 키워드로 제시된 이래 시진핑 국가주석의 2017년 제19차 당대회를 거치며 더욱 확고한 정책 방향이 됐다. 이런 정책 기조에서 첫 생태 현(縣)인 안지현이 출현했다. 베이징 등 7개 대도시가 2013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탄소거래제도는 2017년 전국으로 확대됐다.

한국은 1990~2013년 1인당 탄소배출량이 5.14t에서 11.39t으로 110.8% 급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7.2% 감소) 가운데 증가율 1위였다. 정부가 공표한 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나가더라도 2030년 1인당 탄소배출량은 9.4t이 된다. 이 수치는 러시아(12t) 미국(10.9t)에 이어 세계 3위다. 우리가 비난하는 중국의 그때 목표치는 7.1t(6위)이다.

미세먼지가 평균수명을 갉아먹는 심각한 위협 앞에 책임론 공방은 무의미하다. 반기문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지난달 말 국가기후환경회의 출범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국민에게 읍소한다. 이제는 ‘내가 손해다’ ‘우리 산업계가 손해다’ 이런 말씀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한국에서 기후변화 대응전략이나 환경쓰레기 배출 감소는 대중 관심권에서 우선순위에 밀려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내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플라스틱 빨대 퇴출 운동은 미국의 9세 소년 마일로 크레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한국판 크레스’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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