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세종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낙연(왼쪽) 국무총리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정청 최고위급이 모여 국가재정 운용 전략을 논의했다. 뉴시스

청와대가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나랏돈을 과감하게 풀어 소득 양극화는 물론 저성장까지 돌파해 보겠다는 의지다. 저소득층의 소득 개선과 일자리에 예산을 더 투입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했다. 잠재성장력을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분배, 복지까지 아우르겠다는 전략이다. 소비, 투자, 성장에 이르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다. 국민이 삶의 질 개선을 체감할 수 있도록 재정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정부의 예산은 470조원이다. 정부가 계획대로 연평균 7% 이상 지출을 늘릴 경우 내년 예산은 5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다만 정부의 지출 규모가 정말 확장적인지, 재원은 충분한 것인지 등을 놓고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2019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라의 살림살이도 가계처럼 경제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지출을 늘려야 할 때가 있고, 건전성에 중점을 둬 곳간을 채워야 할 때도 있다”며 “지금의 상황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이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적극적인 재정 운용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긍정적 경제지표를 나열하기도 했다. 아동수당, 치매 국가책임제 등 사회 투자를 늘린 점도 소개했다. “이런 성과 뒤에는 재정의 역할이 컸다. 재정이 마중물이 되고 민간이 확산시켰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더 많은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재정의 역할을 키울 만큼 우리의 경제력이 성장했다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며 곳간을 더 열어야 된다는 점을 거듭 피력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재정 건전성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두 가지 평가를 받고 있다. 보수적인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빠른 저출산·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재정 여력을 최대한 아껴둬야 한다고 본다. 반면 진보적인 전문가들은 여력이 있을 때 향후 나랏빚 폭증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할 양극화, 저성장, 고령화 등을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이 후자 쪽에 무게를 두면서 확장적 재정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재정 정책의 ‘분배 개선’ 효과뿐만 아니라 ‘성장률 제고’ 역할도 강조했다. 재정 지출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뿐만 아니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끌어올릴 수 있다. 경제 성장은 세수 증가 등의 경로를 거쳐 다시 나랏돈을 쓸 수 있는 여력을 늘린다. 이는 각종 복지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온다. 개인이 성공하면 수입과 대출 여력이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고용 확대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같은 고용 안전망 강화, 자영업자 대책 등에 재정의 더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재정은 우리 사회의 중장기 구조 개선뿐 아니라 단기 경기 대응에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지만 여전히 두 가지 논란은 남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정부가 제대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다. 정부의 곳간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20조원대 초과 세수’라는 성과물을 받아들었다. 예상보다 수입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초과 세수는 정부가 더 많이 지출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근거로도 쓰인다. 이는 국가부채 통계에서도 엿보인다.

정부는 나랏빚을 크게 늘리지 않고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70조원 ‘슈퍼 예산’에다 6조7000억원에 이르는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음에도 39.5%에 그친다. 40% 안팎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정부의 총수입과 총지출에서 사회보장성기금(국민연금, 고용보험기금 등) 수지를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도 GDP 대비 ‘-3%’ 선 아래로 관리되고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매우 양호한 수치다. 정부가 겉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과감하게 돈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올해부터 확장적 재정정책을 뒷받침할 여건은 좋지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의 수입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돈을 과감하게 쓰지 못했다. 올해부터 경기 악화의 후폭풍으로 ‘세수 호황’이 꺾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업의 실적 악화에 따른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데다 지방 재정분권으로 중앙정부의 ‘지갑’이 얇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조짐은 보인다. 올해 1~3월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8000억원 감소한 상태다. 세수 진도율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9% 포인트 떨어진 26.4%를 기록했다. 세수 진도율은 정부의 연간 수입 목표치 대비 실적 비율이다.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기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앞으로 ‘실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지출을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든지, 빚을 더 지든지 해야 한다. 세입 기반 확대 없이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출 구조조정’을 논의하기도 했다. 다만 정공법이 될 수는 없다.

만약 나랏빚을 조금 더 늘려 재원을 확보한다면 재정 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 국가채무비율은 GDP와 연동되기 때문에 향후 경제가 성장한다면 다시 재정 건전성을 회복할 가능성도 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이런 측면을 언급했다. 그는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재정수지가 단기적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국가 재정이 매우 건전한 편이기 때문에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증세를 피하려면 지출은 늘리되 빚을 최소화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정부 곳간에 수입도 안정적으로 들어와야 균형이 맞을 수 있다. 증세와 나랏빚 늘리기는 모두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청와대는 “정부의 적극적 재정 역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미래세대에 큰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중장기 재정건전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전슬기 기자, 박세환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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