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 대표 B씨는 시장개척 명목으로 해외 연락사무소를 차렸다.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당연히 한국 법인에서 나갔다. 그런데 이 돈은 B씨 가족의 호화 생활비로 쓰였다. B씨의 배우자는 직원으로 둔갑해 출근하지도 않는데 급여를 받았고 법인카드를 펑펑 썼다. 유학 중인 자녀의 생활비에도 회사 자금이 들어갔다. 자녀 명의로 연락사무소와 시장조사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꾸민 뒤 용역비를 줬다. 이렇게 빠져 나간 돈은 B씨 일가의 명의로 해외에서 주택을 사는데도 전용됐다. 이 과정에서 낸 세금은 한 푼도 없다. 국세청은 A사와 B씨 일가에 법인·소득세 등 억대의 세금 추징을 검토 중이다.

C사의 대표 D씨는 아예 ‘다단계 해외법인 역외탈세’라는 신종 수법을 동원했다. 그는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실체가 없는 서류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세웠다. 이어 이 회사를 통해 100% 출자 형태로 중국과 네덜란드에 해외현지법인 3개를 설립했다.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회사가 100% 출자한 탓에 과세당국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D씨가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친 건 가족에게 편법으로 증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조세회피처의 신탁회사에 페이퍼컴퍼니 주식을 신탁했다. 지분이나 배당 수입을 받게 되는 신탁 수의자로는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를 지정했다. 경영권을 편법으로 물려주면서 증여세를 탈루한 것이다.


조세회피처 등을 활용한 자산가들의 역외탈세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국세청은 문재인정부 들어 네 번째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혐의가 큰 국내 법인 63곳, 외국계 법인 21곳, 자산가 20명을 조사한다고 16일 밝혔다. 국내 법인 중에는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대상에는 탈루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뿐 아니라 전문 조력자까지 들어갔다. 역외탈세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적극 가담한 혐의가 있는 금융전문가도 샅샅이 밝혀내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신종 역외탈세 수법이나 다국적기업의 공격적 조세회피 수법 등과 유사한 탈루 혐의가 있는 사례를 조사 대상으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이 이번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데 스위스 싱가포르로부터 수집한 금융정보가 큰 몫을 했다. 두 나라와 지난해 금융정보 자동교환 협정을 맺으면서 금융정보 자동교환이 가능한 국가는 지난해 기준 79개국으로 전년(46개국)보다 33개국 늘었다.

역외탈세 적발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해외금융계좌 신고 기준이 10억원 이상에서 5억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지난해 보유액을 기준으로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2년간 역외탈세 459건을 조사해 2조6568억원을 추징하고 12명을 고발조치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공격적 조세회피’ 행위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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