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동학농민운동 125주년 행사는 두 가지 언어로 진행됐다. 한국어와 수어(수화언어)다. 대형 전광판 한쪽에 수어통역 화면이 제공되면서 비장애인과 농인 구분없이 행사를 즐길 수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수어통역을 지원한 이현화(33·사진) 국립국어원 주무관은 “행사 준비 단계부터 통역을 언제 어떻게 진행할지 적극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며 “비장애인이 수어를 접하는 경험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농인도 한국인이니까 한국말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예요. 수어가 제1언어인 농인에게 한국어는 (한국사람이 접하는) 영어나 마찬가지죠. 수어도 고유의 문법이 있는데 ‘나는 학교에 간다’는 말에 수어 단어만 그대로 대입해서 통역하면 ‘I’ ‘school’ ‘go’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나라는 2016년 8월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하면서 수어를 농인들의 언어로 인정했다. 농인은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을 말한다.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를 얻어 구어(입으로 소리내어 말하는 언어)를 주로 쓰는 사람과는 다른 개념이다. 자막이 있더라도 수어통역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국어원에서 수어 정책·연구를 담당하는 이 주무관은 “수어법이 제정됐는데도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다는 게 농인 사회의 가장 큰 불만”이라고 했다. 최근 강원 산불은 농인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사건 당일 방송사들은 재난방송에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았다가 장애인단체가 항의하자 다음 날 뒤늦게 수어통역을 추가했다. 이 주무관은 “재난상황에서 수어통역이 없다는 건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며 “농인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수어의 영어표현은 ‘hand language’가 아니라 ‘sign language’다. 의문문을 만들 때 눈썹을 치켜올리는 등 손과 얼굴을 함께 사용해야 정확한 의미가 전달된다. 이 때문에 화면 한구석에 작은 ‘동그라미’로 생생한 통역을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다.

해외에선 아예 정치인이 수어통역사를 바로 옆에 세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뉴질랜드 총리는 지난 3월 이슬람사원 테러사건을 계기로 반자동 소총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오른편에 수어통역사를 세웠다. 수어법이 없는 일본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수어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 주무관은 “수어통역사가 되기 위한 자격증 시험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어 문법을 정리한 책은 한 권도 없다”고 했다. 국립국어원은 수어 언어자료를 구축하는 ‘말뭉치’ 사업 등 수어 자체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수어를 가르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수어 교원자격제도도 운영 중이다.

이 주무관은 “청각장애는 다른 장애와 비교해 힘들지 않을 거란 편견이 있지만, 언어가 다르다는 건 사람과 단절된다는 것”이라며 “교육이나 직업 등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갖지 못하는 너무나 큰 장애”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지만 조금씩 변화가 있다”며 “언젠가 정치인과 수어통역사가 강단에 함께 서고, 수어 뉴스프로그램이 따로 편성되는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사진=권현구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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