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선교학교 졸업식(위쪽). 아래쪽은 평양 남산현교회에 모인 성도들의 모습. 태극기도 펄럭인다. 1893년 설립된 감리교 남산현교회와 이듬해 세워진 장로교 장대현교회는 1919년 3·1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북한 지역에서 벌어진 3·1운동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북측에서도 3·1 만세시위가 활발했지만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어 그동안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된다면 북한 지역 사적지 공동 조사나 관련 사료 공유 등 학술 교류를 통해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3·1운동은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났지만, 북한 지역의 만세운동은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첫날인 1919년 3월 1일 시위가 발생한 8곳 가운데 6곳이 북한 지역이었을 만큼 북한 지역 시위는 만세운동 확산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첫날 시위 지역은 서울, 경기도 고양(이상 남측)과 평양, 평안남도 진남포·안주, 평안북도 선천·의주, 함경남도 원산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14일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276회의 만세시위 가운데 197회(71.3%)가 북한에서 발생했다. 이처럼 3·1운동 초기에는 북측 지역의 참여도가 높았고, 희생자도 많았다.

많은 시위가 벌어졌던 만큼 북측에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도 많을 것으로 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북측의 3·1운동 관련 사적지가 총 812곳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지역별로는 황해도 158곳, 평안도 215곳, 함경도 281곳, 경기도 북부 75곳, 강원도 북부 83곳이다.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3·1운동의 지역별 시위 발생 건수.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이들 지역 중 특히 평안도는 건물·가옥 등 유형(형태가 남아 있는) 사적지가 많고 중요도도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당시 이 지역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조직이 잘 갖춰져 있어 만세시위가 종교계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펼쳐졌다. 특히 남산현교회(감리교)와 장대현교회(장로교), 평양천도교구당(천도교)은 각 교계가 주도한 평양 3·1운동의 시발점이었다.

이 외에도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남강 이승훈 선생이 기독교계 인사들과 만세운동을 논의한 평양 기홀병원, 3·1운동 최대 참극(53명 희생)이 발생한 평남 맹산군 헌병분견대, 서북지역 독립운동 탄압의 본산인 평양경찰서, 평남 강서군 사천시장(일명 모락장), 함북 성진읍내, 황해도 해주읍 시장 등이 주요 사적지로 꼽힌다.

정부는 한반도에 훈풍이 불던 지난해 3·1운동과 관련한 남북 공동 학술회의와 특별전시회 개최 등의 계획을 발표했다. 남북 대학생들의 주요 역사 유적지 상호 방문도 야심차게 추진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남북 관계가 주춤해지면서 공동 사업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일 “3·1운동과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남북 간의 사업은 없다”고 밝혔다.

민간단체인 3·1운동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측도 “지난해 말 방북해 3·1운동 유적지에 대한 공동 조사나 학술대회, 청년들의 유적 답사 등을 제안했지만 북측에선 ‘당국 간 협의가 먼저’라는 원칙만 고수할 뿐 답이 오지 않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 차원의 논의가 벽에 막히자 학계는 자체적인 교류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학술 교류 차원에서 북한 사적지 연구 결과를 북측에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현재 당국에선 대북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해 자체적으로 학술 교류를 추진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며 “북측 학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먼저 북측에 어떤 문헌이 남아 있는지부터 조사할 필요가 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북측의 과거 법원 판결문과 수형 기록, 검찰 조사 자료가 발굴된다면 3·1운동사 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며 “북측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야 비로소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3·1운동의 전반적인 현황이 파악된다”고 말했다.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안중근 의사나 홍범도 장군 등 남북이 모두 존경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학술 교류부터 시작해 역사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북측 사적지에 대한 조사는 중국 접경지역에서 전개된 무장투쟁과 해외 독립운동의 연계를 밝히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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