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인류에 끼친 지대한 공헌 중 하나는 사람들을 일요일에 쉬게 만든 것 안식일 준수 계명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하나님 및 이웃에 대한 사랑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준칙

기독교가 인류사회에 끼친 지대한 공헌 중 하나는 사람들을 일요일에 쉬게 만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천년 전부터 신앙적인 이유로 7일 주기로 하루씩 쉬었고, 쉬는 토요일을 ‘안식일’이라고 명명하였다. 이 유산은 로마제국에 계승됐다. 다만 토요일이 아니라 예수가 부활한 일요일 하루를 쉬도록 법정화되었다. ‘워라밸’을 강조하는 현대 세계에서 일주일에 하루씩 쉬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쉽게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 제도를 폐지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17~18세기를 ‘혁명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의 대표적 사조(思潮) 중 하나는 인류의 지향점을 ‘예루살렘’에서 ‘아테네’로 바꾸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신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이성을 앉히는 것이었다. 혁명의 시대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프랑스 대혁명(1789년)인데, 이 혁명의 주체세력이 세운 공화정부도 이성 중심의 정책을 최우선과제로 제시하였다. 특히, 프랑스 사회에서 기독교적 색채를 빼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공화력(共和曆)’이라는 달력의 제정이다. 공화력의 가장 큰 특징은 7일 주기의 휴일제도를 10일 주기의 휴일제도로 바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화력은 인간의 생체리듬에 맞지 않아 1806년 1월 1일 나폴레옹 황제에 의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죽도록 일을 하는 존재다. 인류는 생존과 번식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또 삶의 욕망으로 인한 탐욕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는 존재다. 한편으로 인간은 쉬어야만 하는 존재다. 쉬지 않거나 쉬지 못하는 인간은 건강과 행복에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을 멈추고 쉬는 주기를 공식화한 것은 인간 모두에게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만약 쉬는 것을 개인의 선택에 맡겼더라면 인간은 경쟁심으로 인해 쉬지 못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일하거나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쉬는 것이 불안해지고 결국에는 일터나 도서관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천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쉬어 오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쉬는 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유대인 사회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일주일에 하루씩 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이웃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성경 가운데 ‘출애굽기’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십계명 중 제4계명인 ‘안식일 성수(聖守)’에 관한 부분이다. 이 계명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일주일에 하루씩 쉬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과 연관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이웃도 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일 그 사람이 일요일에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되면, 그 회사의 종업원들도 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만일 종업원들이 회사 경영주와 같은 신앙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그들은 위 계명을 들어 경영주에게 휴식권을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위 계명에서는 잠시 머무는 손님에게까지도 휴식권이 보장되어야 함을 명령하고 있다. 수천년 전에 이미 이런 준칙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근대 들어 일과 쉼의 분리가 일어난 이후 휴식권의 보장은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휴식권의 보장에 있어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나의 쉼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휴일에 쉼을 누리기 위해 식당이나 쇼핑몰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휴일을 반납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휴식권 보장을 위해서는 시간적 및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갑’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쉬어야만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또 휴일에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쉴 수가 없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쉼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안식일 준수의 근본정신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안식일 제도는 모든 인간에게 휴식권을 보장해 준다는 의미에서 공동체의 유지 및 존속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제도이다. 안식일 준수 계명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하나님 및 이웃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준칙이다. 이 준칙의 정신을 되살려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휴일에 평등하게 생계를 위한 근로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가족과 함께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