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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5월 22일] 선한 사마리아법


찬송 :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218장(통 3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33~34절


말씀 :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위급한 환자를 구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측면에서 법이 적용됩니다. 첫째는 면책특권입니다. 선의의 의도로 위험에 처한 환자를 구조하거나 돕다가 발생한 불의의 상황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심장이 멎은 사람을 발견해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렸는데 이 과정에서 갈비뼈가 부러졌을 경우, 사람을 살리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발생된 일이기에 법적 책임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처럼 선한 일을 하고도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둘째 측면은 처벌조항입니다. 첫째와는 반대로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이웃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친 경우 ‘구조 불이행(Failure-to-Rescue)’ 즉 그 이웃을 도와주어도 자신에게 전혀 해가 끼치지 않는 상황이 분명함에도 도와주지 않은 경우이기에 처벌이 가능하다는 법입니다. 한국에는 없는 법이지만 선진국에서는 몇몇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도 되는가의 문제로 의견 대립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답변하시면서 사용하신 예화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율법교사와 오늘의 우리들에게 ‘참 이웃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고 ‘가서 행하라’라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선한 사마리아법’으로 강제 조항이 만들어지면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주게 될까요. 본문은 “보고 불쌍히 여겨”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법 때문에 도와준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불쌍히 여긴다’라는 단어는 ‘고통을 함께 나눈다’라는 의미에 가까우며 단어의 어원적 뜻은 ‘내장이 뒤틀릴 정도로 마음이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거꾸로 정리해보면, ‘이런 이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돕지 않는다면 참 이웃이 아니며, 그렇게 되면 영생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자부해도 ‘행함’이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한 야고보서 2장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살기 힘든 요즈음 세상에서 남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 어떻게 가능할까요. 전도나 영혼구원도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남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그 마음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 하나님,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내가 참 이웃이 되게 하옵소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최규영 목사(일본 동경주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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