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안중식 100주기 특별전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에서 안중식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안중식·조석진 합작의 ‘기명절지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유명세에 기댄 얄팍한 기획인가, 소장품을 충실히 보여주는 중립적 전시인가.

국립중앙박물관(이하 박물관)이 안중식(1861~1919) 100주기 특별전으로 마련한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전(6월 2일까지)을 두고 미술계 의견이 분분하다.

박물관은 기획 의도와 관련, “1919년 안중식 서거는 한 예술가의 죽음이 아니라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화단을 이끌었던 기성세대의 퇴장과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밝혔다. 장승업(1843~1897)이 꽃피운 기명절지화, 청록산수 등 조선 말기의 회화 전통은 안중식 세대가 징검다리가 돼 다음 세대인 고희동과 이도영, 1890년대생인 김은호 노수현 이상범 변관식, 20세기 화가인 김환기 등으로 이어졌다. 안중식을 통해 근대 서화가 100년을 보여준다는 시도다. 서화가뿐 아니라 김옥균 박영효 민영익 오세창 등 개화지식인을 병치시켜 개항과 일제강점의 시대적 격변을 보여준다. 안중식의 ‘영광풍경’을 비롯한 서화, 사진, 삽화 등 100건이 나왔다.

문제는 전시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기획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시 스타 화가였던 안중식이 행적과 예술세계로 미뤄 항일 정신을 기리는 전시에 주인공으로 초대되는 것이 합당하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안중식의 ‘백악춘효’.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안중식은 조석진과 함께 고종 어진을 그린 마지막 궁중 화가였다. 중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신문물을 수용했던 인물이다. 군수를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안중식은 동양식 정물화인 ‘기명절지화’와 ‘도석인물화’ 등 부유층 취향에 맞는 장식적이고 기복적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주로 해석이 돼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안중식이 그린 잡지 ‘청춘’의 표지와 삽화 등도 공개됐다. 시대의 격변 속에 붓과 펜을 함께 쥐었던 계몽운동가로서의 모습을 부각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 안중식이 1915년 경복궁을 그린 ‘백악춘효(白岳春曉·백악의 봄날 새벽)’ 여름본과 가을본 2점을 나란히 전시한 것은 이런 의도를 한껏 부각하는 장치다.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언젠가 봄이 오고 새벽이 올 것을 염원하는 ‘은둔과 저항’의 이미지를 입힌 것이다. 일본행을 택한 지운영, 황철의 행적에 대해서는 ‘은둔’이라는 표현으로 얼버무렸다는 비판도 있다.

미술연구자 최석태씨는 21일 “안중식의 회화 세계에 혁신은 없었다. 중국 화보를 답습해 친일 고관대작의 입맛에 맞는 장르를 화려하게 그렸던 잘나가는 화가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중식은 군수 시절 단발령을 강압적으로 실시하다 물의를 빚은 전력도 있다”면서 “항일의 전시 취지를 살리는 의도였다면 이도영 양기훈 채용신 등 ‘대한제국기 3대 거장’을 부각해 차별화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도영은 기명절지화에서 종래의 소재인 중국 자기 대신에 우리 옛 도기를 그려 넣는 혁신을 시도했다.

이도영의 ‘나려기완도’. 이도영은 그림 속 도자기를 기존 소재인 중국 도자기가 아닌 신라·고려시대 자기로 대체해 민족의식을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미술사학자 조은정씨는 “안중식의 행적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전통과 근대를 연결하는 중요 인물임은 틀림없다”면서 “박물관이 소장한 근대 서화를 안중식 서거 100주년을 맞아 모두 꺼내 보여주고 해석은 관람객에게 맡기는 이런 방식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중식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오세창과의 친분 때문에 일경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중앙박물관이 미술사에 내리는 해석은 중요하다”며 “‘은둔과 저항’의 키워드에 안중식이 적합한 인물인지 외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해석의 엄밀성을 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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