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김영진 전 의원은 1946년생 개띠 동갑들이다. 노무현은 김영진을 첫 농림부 장관으로 기용할 만큼 동갑내기를 챙겼다. 한 사람은 상고를, 한 사람은 농고를 나왔다. 2003년 5월, 노무현은 느닷없이 농림부 장관을 공식수행원에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 농림부가 생긴 이래 대통령 방미 공식수행원이 된 건 처음이었다. 대통령의 각별한 배려였다. 독실한 개신교 장로로 국가조찬기도회장인 김영진은 당황했으나 양국우호관계 증진에 도울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했다. “반미면 어떠냐”며 전시작전권 환수를 천명한 한국 대통령, 주한미군 지위 변경이나 철수까지 거론되는 한·미 관계, 북핵 위기에 따른 미국의 대북 공격설, 남북 관계 경색 등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김영진은 이렇게 회상한다.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동갑내기 다혈질 두 사람이 부딪히면 정상회담 결과가 어떨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김영진은 준비 과정에서 두 가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정상회담 성공과 한반도 안정을 기원하는 양국 국가조찬기도회 개최와 결이 다른 두 정상의 첫 만남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둘 다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다. 김영진은 미국 국가조찬기도회장인 친한파 토니 홀 연방하원의원에게 연락, 결국 김진표 재정경제부·윤영관 외교장관 등 공식수행원과 미 상하원 의원 등 모두 50여명이 참석한 의사당기도회를 성사시켰다. 김영진은 정상회담 전날 밤 대통령을 따로 만나 두 가지 건의 겸 보고를 했다. 기도회가 열린다는 것과 청년 시절 마약과 술에 찌들었던 부시가 로라 부시 여사의 독실한 신앙심과 눈물의 호소에 회심, 결국 대통령 자리에까지 왔다는 점을 참고해 덕담하면 부드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은 “나는 의회 연설도 없는데 당신이 더 낫다. 알았다”고 했다. 다음 날 노무현은 부시와 만나 첫 마디로 김영진이 한 얘기를 풀어내며 “하나님과의 연줄로 미합중국 대통령이 됐느냐”고 유머 섞인 덕담을 했다. 부시는 파안대소했다. 그리고 아내의 눈물 어린 격려와 충고를 받아 성실하게 노력했더니 대통령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회담은 양국이 만족하는 수준으로 끝났다. 작지만 회담을 위한 여러 노력들이 있었다. 첫 만남을 그렇게 가졌던 부시가 서거 10주년에 직접 그린 초상화를 들고 동갑내기 노무현을 찾는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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