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피겔(Der Spiegel)은 독일에서 최고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로 꼽힌다. 1947년 창간 이후 수많은 특종 기사와 권력의 부정부패 고발 기사를 쏟아냈다. 독일 사회의 가장 민감한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명성을 얻었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탐독하는 유력지로 자리잡았다. 발행부수는 150만부에 달한다. 슈피겔은 ‘거울’이라는 뜻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서독의 타임’으로 불렸다.

그런 슈피겔이 최근호에서 독일의 탈원전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슈피겔은 독일 정부가 지난 5년간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위해 1600억 유로(209조원)를 쏟아부었지만 석탄 발전이 발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슈피겔은 풍력과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날씨에 따라 불규칙해 전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정책의 실패와 전력량 부족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유럽연합(EU) 국가들 중에서 가장 비싸다.

독일 국민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지역 주민의 반발로 재생에너지 송전선로 구축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필요한 송전선로가 7700㎞인데 950㎞만 설치된 것이다. 원전을 줄이는 대신 석탄 발전을 늘리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지키기 어려워졌다. 독일이 2050년까지 에너지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2조~3조4000억 유로(2620조~4455조원)를 쏟아부어야 한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데 비해 효율성은 떨어지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EU가 1990년을 기준 연도로 해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5%까지 줄이려면 원전 비중을 25%로 유지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는 “EU가 2050년 원전 비중을 전체 발전량의 25%로 유지하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할 뿐 아니라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고 강조했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석탄 발전보다 월등히 적은 원전을 포기할 경우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보다 10여년 먼저 탈원전의 길을 가고 있는 벨기에는 전력 수요의 22%를 수입할 정도로 블랙아웃(대정전)을 걱정하고 있다.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고 녹색당을 연립정부에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졸속으로 결정한 탈원전 정책이 거센 후폭풍을 맞은 것이다.

해외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문재인정부가 탈원전 정책에서 유턴해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정권이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는 사이에 한국전력의 경쟁력은 크게 떨어졌다. 한전은 올 1분기에 6299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1분기 실적으로는 한전 사상 최악의 손실이다. 106개 자회사의 실적을 제외할 경우 한전의 1분기 영업적자는 2조4114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한전의 적자가 탈원전이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연료비가 크게 오르면 한전의 적자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만성 적자의 늪에 빠질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한전은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할 것이다. 이래저래 서민만 생고생하게 됐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제시한 원전 해체산업 육성 방안이 성공할지도 의문이다. 원전을 설계·건설·운영·보수하지 않고 어떻게 해체 기술을 습득하겠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한전 소액주주들이 한전의 영업적자 확대와 주가 하락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를 탈원전 정책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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