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짜리 생수 한 병이 있다. ‘먹는샘물’이라고 적힌 플라스틱 병에 담긴 이 제품은 불순물을 걸러낸 지하수다. 생수시장이 처음 열린 1995년 ‘물을 파는 행태’에 대해 개탄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거나 끓여 먹는 게 익숙했던 시절을 지나온 이들은 물병에 지하수를 담아 파는 것을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파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2019년 우리나라 생수 시장 규모는 1조원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24일 시장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생수 시장 규모는 8300억원이었고, 올해는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는 닐슨코리아보다 생수 시장 규모를 더 크게 보고 있다. 2023년까지 2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최근 국내 생수 시장을 키우는 동력 중 하나는 ‘정기 배송’이다. 일주일, 보름 단위로 따박따박 문 앞으로 생수를 가져다주는 편의성이 소비자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가고 있다. 생필품인 생수 정기 배송에 대형 온라인몰은 물론이고 제조 업체들도 뛰어들었다. 1, 2인 가구 증가도 생수 시장을 키우고 있다. 공간을 차지하는 정수기보다 간편하게 먹고 치울 수 있는 생수를 선호하는 소비층을 겨냥해 생수 용량도 200㎖, 1ℓ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편의점에서 흔히 파는 생수 한 병에는 뜻밖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편의상 생수라고 말하지만 법적 용어는 ‘먹는샘물’이다. 우리나라의 먹는샘물은 주로 지하수를 끌어올린 물을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생수 제조·판매에 가장 중요한 건 ‘수원지’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목 넘김이 깔끔해 맛이 좋은 생수를 내놓으려면 좋은 수원지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시장점유율 40.2%의 ‘제주삼다수’는 청정 지역인 제주도에 수원지가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2012년까지 ‘제주삼다수’를 위탁 판매했던 농심은 판매권이 광동제약으로 넘어가면서 ‘맛좋은 물’을 찾아 백두산으로 갔다. 농심은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백두산 원시림보호구역 안의 내두천을 수원지로 개발해 ‘백산수’를 출시했다. 수원지의 특별함, 물맛의 차별화를 노린 전략이다.

생수를 만드는 것도 ‘수원지’에서 시작된다. 먼저 수원지를 개발해야 한다. 깨끗하고 맛있는 물이 나오는 수원지를 찾아 시·도지사에게 ‘샘물개발허가’를 받은 뒤 제조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환경영향조사서도 내야 한다. 보통 수원지 개발에서 제품 출시까지 5~10년이 걸린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우리나라에서 먹는샘물을 만드는 업체는 전국에 61곳이 있다. 대동강 물을 떠서 파는 차원은 아니다.

하루 동안 끌어올릴 수 있는 물의 양도 제한돼 있다. 단일 수원지에서 취수량이 가장 많은 곳은 ‘제주삼다수’ 수원지인 제주시 조천읍이다. 하루 최대 4600t의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다. 하루 취수량을 제한하는데도 수원지는 종종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강원도에서는 수원지 개발을 둘러싸고 소송전이 진행되고 있다. 2015년 횡성군 주민들이 강원도지사를 상대로 먹는샘물 제조 공장의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먹는샘물 공장이 지하수를 끌어다 쓰면 지역 주민들이 지하수 부족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게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심은 강원도민들의 손을 들어줬으나 지난 1월 항소심에서는 결과가 완전히 뒤집혔다. 재판은 현재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최근에는 경북 울릉군에서도 먹는샘물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울릉군은 LG생활건강과 합작법인 ‘울릉샘물’을 만들고, ‘제2의 제주삼다수’를 목표로 이르면 내년 브랜드를 출시할 계획이다. 하루 1000t 취수 허가를 받았는데, 지역 주민들의 물 부족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수원지 선정부터 취수량까지 까다롭게 관리되는 우리나라의 생수 맛은 어떨까. ‘제주삼다수’나 ‘백산수’처럼 시중에 판매되는 대기업 제조와 국산 생수 제품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정화작용을 거친 광천수가 대부분이다. 암반대수층 안에서 만들어진 자연 상태의 깨끗한 물로 미네랄 함량이 높아 청량감을 느끼기에 좋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먹는샘물의 안전성도 깐깐하게 관리되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먹는 물 수질검사 항목은 지난해 기준으로 60개에 달한다. 일본(51개)이나 유럽연합(EU·45개)보다 많고 세계보건기구(90개)나 미국(89개)보다는 적은 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미량의 유해물질, 바이러스 등 병원성 미생물을 안전한 수준으로 처리하기 위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춰 수질 기준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수 시장은 ‘정제수’ 시장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원지 개발이 무한정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제수는 수돗물을 정수해 만든다. 정수 과정에서 미네랄 성분도 빠져나가게 돼 물맛이 먹는샘물보다 떨어진다. 대신 먹는샘물보다 개발이나 제조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싼값에 내놓을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정제수를 판매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먹는샘물과 같은 ‘내추럴 미네랄 워터’는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분류돼 더 비싸다”며 “국내 시장도 어느 정도 몸집을 키우면 저가형 정제수와 고급 먹는샘물로 양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환경 문제도 업계의 도전 과제가 됐다. 생수는 보통 플라스틱 병에 담아 판매하는데,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롯데칠성, 풀무원 등은 생수병에 플라스틱을 덜 사용해 얇게 만드는 방안을 내놨다. 친환경적으로 물에 녹는 라벨, 분리배출이 용이하도록 손쉽게 제거되는 라벨을 적용하기도 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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