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12) 문서선교 지상목표로 출판시장 뛰어들어

출판계 몸담아 책 만들 줄만 알았지 얼마나 냉혹한 시장인지 짐작 못 해

규장출판사 직원들이 채플실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직원 예배는 1978년 설립 당시부터 매일 오전 8시 20분에 드리고 있다.

규장문화사 창립에 앞서 ‘규장수칙 일곱가지’를 기도로 정했다. 그 아래에 로마서 8장 28절 전문을 실어 모든 규장 간행본의 판권에 수록하고 있다. 나의 소박한 의지를 담은 ‘규정수칙 일곱가지’는 다음과 같다.

‘1. 기도로 기획하고 기도로 제작한다. 2. 오직 그리스도의 성품을 사모하는 독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책만을 출판한다. 3. 한 활자 한 문장에 온 정성을 쏟는다. 4. 성실과 정확을 생명으로 삼고 일한다. 5.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신앙과 신행일치에의 안내자 역할을 다한다. 6. 충고와 조언을 항상 감사로 경청한다. 7. 지상목표는 문서선교에 있다.’

탐구당 홍석우 사장에게 어렵게 입을 열었다. 회사를 떠나겠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고 모든 일을 당신에게 다 맡겨왔잖소. 인제 와서 그만두겠다니 도대체 무슨 불만이 있다는 거요?”

나는 내 진심을 말했다. “늦게 예수를 믿게 됐는데 장로까지 되고 보니 부득불 기독교 전문출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경제적인 요구도 없습니다. 법정 퇴직금과 제가 그동안 써온 사장님의 책상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20여년을 출판계에 몸담았지만 책을 만들 줄만 알았지 출판시장이 얼마나 냉혹한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과 같은 처지였다. 그저 좋은 책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출판사의 자본금이라야 퇴직금으로 받은 몇백만원이 전부였다. 교회 장로로서 경리장부는 회계사에게 맡겨 입출금 정리를 정확히 하겠다는 게 유일한 복안이었다.

오직 기도로 기획하고 기도로 제작한다는 것을 첫 규장수칙으로 삼고 그대로 경영하리라는 결심과 각오만 다졌다. 월급을 줘야 하는 직원은 정직한 인상의 영업사원 한 사람과 기초적인 장부를 기재할 수 있는 고졸의 착한 처녀 경리 한 사람 둘만 뽑았다. 책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모든 일은 나 혼자 감당할 생각이었다.

사무실은 종로예식장 입구에 있던, 일제강점기 때 지은 구식 집 옥상의 자그마한 방 둘과 서고로 쓸 좁은 공간이 전부였다. 삐걱 소리가 나는 좁고 낡은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는 3층 집에 전세로 들어갔다. 2층에는 치과가 개업해 있었다.

1978년 7월 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사무실 문을 열었다. 탐구당을 담당하던 세무사에게 첫 달부터 수고비를 주면서 이중장부가 없는 정직한 출판사를 시작했다.

배순조 서울 성일교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두 분을 모시고 아내와 직원 둘까지 함께 비좁은 사무실에서 경건하게 창업예배를 드렸다. 이후엔 아침마다 나의 인도로 다 함께 직원예배를 드렸다.

일찍이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번각발행권을 위임받았으나 탐구당에서 유보하고 있던 대형국판 2000여쪽의 양장본 ‘여지도서(輿地圖書)’ 번각발행을 200부 한정판으로 출판했다. 한국근대사 연구에 필요한 고전으로서 각 대학 도서관과 지리학자들도 개인적으로 필요로 하는 책이었다. 규장문화사의 이름에 합당한 책이었다.

현금으로 구입한 종잇값 때문에 회사는 출발부터 휘청거렸다. 다른 제작비용은 탐구당 거래처들의 호의로 4~5개월 연수표(실제 발행일보다 훗날을 발행일로 정한 수표)로 지급했다. 작지만 비싼 광고가 한 일간신문에 나가자 구매문의 전화 대신 신문사 광고담당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광고를 거저 내는 것처럼 해주겠다는 전화였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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