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차 문재인정부 우월감으로 내식대로만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아 온 것은 아닌지
공무원 군기 잡고 역사를 형벌로 다스릴 생각 말고 성찰하며 소통의 물꼬 터야


지난 10일은 현 정부 출범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청와대 정책실장이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고 한 말이 언론에 포착되었다. 말을 ‘덜 듣는’ 공무원에게 ‘군기’를 잡겠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그렇게 해달라고 한 데 대해서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지만, 그만큼 국정성과에 대한 부담감이 큰 때문이리라. 이는 그동안의 성과가 부진했음을 자인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남은 시간과의 경쟁에 더욱 박차가 가해질 것임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현 정부가 지나온 시간보다는 앞으로 남은 시간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실장의 말대로 마치 임기 마지막 해인 양 서두르고 다그치는 모습은 어색하기까지 하다. 경제가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고 고용 사정도 희망적이라고 하면서 ‘사수’를 외쳤던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마저 스스로 무너뜨릴 조짐이다. 지난 2년에 대한 성찰은 기색조차 없다.

남아 있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고, 저녁이 하루의 끝이 아니듯 현 정부 임기가 국정의 끝이 아닐진대 왜 그런가. 인간의 생애나 활동기와는 달리 반드시 연속은 아니더라도 국정운영의 사명은 또다시 주어질 수 있는데 20년, 50년, 심지어 100년 집권을 운위하는 현 집권세력이 이렇게 조급증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지난 2년간의 실적이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현듯 최근에 읽은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이 떠올랐다. 노벨상 수상 이전에 부커상을 받은 이 작품은 영국 옥스퍼드셔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에서 평생을 복무한 집사를 주인공으로 하여 인간성과 계급과 문화를 ‘가슴 저미게 파고든’ 소설이다. ‘이지적으로 부여된 충성심’을 가지고 평생토록 달링턴 경을 모셔온 그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집사는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교양과 전문가적 품위를 갖춘 계급인데 주인공은 그 가운데서도 일류의 모임인 ‘헤이스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이 저명한 집사였던 부친에 뒤지지 않은 위대한 집사라는 긍지를 반복해서 입 밖으로 드러낸다.

달링턴 경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맞서 싸웠지만 패한 적에게는 자비와 온정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영국 신사이다. 그는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조항들을 수정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급기야는 체임벌린 수상에게 히틀러의 평화회담 초청을 수락하도록 설득한다. 회담에서 귀국한 즉시 체임벌린은 이제 전쟁 걱정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실은 히틀러에게 속은 것이었고,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깊숙이 빠져든 것은 익히 아는 사실(史實)이다. 6개월 후에 체임벌린이 사망하고 생존의 달링턴 경에게 여론의 비난이 집중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주인공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오늘날 나리의 삶과 업적이 안쓰러운 헛수고쯤으로 여겨진다 해도 내 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응분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달링턴 경의 몰락으로 ‘일괄 거래의 한 품목’으로 양도된 주인공은 새 주인의 배려로 생애 처음 휴가여행을 떠난다. 아래 직급의 총무로 주인공 못지않게 깐깐하지만 인간미는 나은 켄턴 양이 결혼으로 달링턴 홀을 떠난 지 오래 지나 보내온 편지의 한 구절, “남은 내 인생이 텅 빈 허공처럼 내 앞에 펼쳐집니다”를 곱씹으며. 같이 일할 때 부딪치면서도 상호 연정을 품었던 사이이니까 안위가 걱정될 수밖에. 그런데 정작 만난 당사자는 그런 구절을 썼을 리가 없다고 부인한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딸을 사랑하며 잘 살아가고 있노라고.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제 벤 부인으로 불리는 그녀는 주인공에게 되묻는다.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느냐”고.

여행 마지막 날, 하루의 가장 좋은 시간인 저녁, 주인공은 깊은 성찰에 빠진다. 위대한 자부심으로 뭉친 우월감으로 내 식대로만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아온 자신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다. 드디어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농담과 유머를 개발하기로 다짐한다. 깊은 성찰의 결론치고는 미흡하고 안타깝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의 장기인 긍지와 성실이 소통과 결합하면 남아 있는 나날을 윤택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하게 한다.

마지막 해로 여겨진다는 3년 차에 막 접어든 현 정부에 남아 있는 시간이 적은 것도 아니다. 현 정부 임기가 반드시 끝도 아니다. 군기잡기에 앞서 공무원들의 전문가적 품위를 회복시키기 위한 성찰이 필요하다. 확장재정이 그 명분과는 달리 구조개혁을 저해하는 측면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도 필요하다. 역사를 형벌로 다스릴 생각일랑 하지 말고 주도적으로 소통의 물꼬부터 터야만 남아 있는 산술적 시간에 더해 더 많은 역사적 나날들이 허락될 수 있을 것이다.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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