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이자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인 승효상 ‘이로재’ 건축사사무소 대표를 만났다. 용산공원 조성계획 추진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왔다는 그와 인사를 나눈 뒤 기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 “선생님, 혼란스럽습니다”라는 탄식과도 같은 말이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하소연이었다. 눈치 채셨겠지만 하소연이라는 게 난데없이, 상대를 불문하고 나오는 건 아니다. 그날 승 대표를 만나기 전 이미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과 건축 분야를 취재할 때다. ‘건축’의 ‘건’자도 모르던 무식한 기자에게 건축가들은 집도, 건물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승 대표도 그랬다. 그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집 ‘수졸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을 설계할 때도 ‘빈자의 미학’이라는 자신의 철학대로 열심히 비워냈고 대신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그때부터 건축에 빠졌다. 타지에 가면 호텔보다는 그 지역을 이야기하는 장소로 숙소를 대신했다. 네덜란드에선 45도 각도로 비튼 입방체 방들을 큐브처럼 맞춰놓은 ‘큐브하우스’에서 묵기 위해 로테르담을 찾았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정부가 고성과 수도원을 개조해 운영하는 호텔 체인 파라도르를 이용하기 위해 차량을 렌트하는 공을 들였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중저가 호텔과 비슷하거나 더 저렴했다.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군산에선 적산가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고 안동에선 한옥 고택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2년이란 시간이 흘러 승 대표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더 이상 건축을 취재하는 기자가 아니었고 국토교통부 출입을 막 시작한 터였다. 똑같은 집을 이제는 부동산으로 봐야 했다. 예술을 논하던 건축은 어느새 부의 가치로 탈바꿈했다. 건축과 부동산의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틀림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다행이라면 그런 고민, 그런 혼란을 개인이 덤터기쓰듯 혼자 감당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 주말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폐막작으로 오른 ‘홈(HOME)’이 그랬다. 무대 위 일루셔니스트라 불리는 제프소벨의 이 작품은 물리적 의미의 집(House)과 정서적 의미의 집(Home)의 관계성을 탐구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과 주택 문제를 다뤘다.

그렇다. 부동산과 건축, 사는 곳과 사는 것, 홈과 하우스는 같은 대상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내가 2014년과 2016년 경험한 혼란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이 같은 혼란을 지금 부동산 정책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듯하다. 혼란의 강도가 2017년부터 더 거세지기는 했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3기 신도시 예정지로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 등 세 곳을 선정했고 최근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2곳을 추가했다. 1, 2기 신도시 주민들이 반발했다. 고양 창릉 인근의 일산 신도시 주민들은 매주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들도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1기 신도시인 일산에 살고 있는 지인이나 취재를 위해 만났던 2기 신도시 주민들은 서울보다 비교적 저렴한 돈으로 구입한 지금의 집에 만족감을 보였었다. 시간차는 있지만 풍족한 인프라를 제공해 준다는 정부의 말도 믿었다. 자리를 잡은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이미 자신의 집을 ‘사는 곳’으로 받아들였다. 2기 신도시 주민들은 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교통 등 편의시설 구축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3기 신도시가 발표됐고 이들의 생각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집값 하락을 걱정하며 반발했다. 홈이던 집은 갑자기 하우스가 됐고 사는 것이 됐다. 부동산 시장은 출렁이고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사는 것’이 ‘사는 곳’을 이겼다. 일산 집값이 하락했다는 통계가 나왔으니 말이다.

서윤경 온라인뉴스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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