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기준 총인구 1억2653만명 중 65살 이상 노인이 28%(3547만명)에 달하는 초고령화사회 일본은 최근 급증하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21일에는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 대책을 만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그동안 일본에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한 달 가까이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것은 지난 4월 19일 도쿄 번화가 이케부쿠로에서 발생한 사고 때문이다. 당시 87세 운전자 이즈카 고조가 몰던 승용차가 100㎞ 가까운 속도로 질주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쳤다. 31살 엄마와 3살 딸 2명이 목숨을 잃었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달 아내와 딸의 장례를 치른 남성은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령자 운전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가족 중에 운전이 불안한 고령자가 있다면 다른 가족들이 잘 생각해주기 바란다”며 사회적 관심을 호소했다.

여론이 한층 뜨거워진 것은 경찰이 사고를 낸 이즈카를 본격 조사하면서부터다. 그는 경제산업성 공업기술원장을 지낸 고위관료 출신이다. 이즈카는 지난 18일 경찰에 출석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위의 부축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 많은 논란을 자아냈다. 시민들은 이즈카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느냐”고 경악했다. 이즈카는 경찰 조사에서 “액셀이 눌린 상태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운전자 과실로 인한 사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일본은 2017년 3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해 ‘인지기능 검사’를 의무화했다. 이 검사는 운전자의 기억력, 판단력을 판정하는 필기시험이다. 초기 치매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이즈카는 당시 검사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고 운전면허를 재발급받았다. 사고 몇 달 전에는 낙상으로 치료를 받았고, 병원에서 운전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받은 상태였다. 아사히신문은 경찰청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사망 교통사고를 낸 75세 이상 운전자의 절반인 50.7%가 인지기능 검사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고 22일 보도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령자에 대한 운전면허 반납을 강제로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졌다. 75세 이상 운전자는 3년마다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한다. 이때 인지기능 검사에서 ‘치매 우려’ 판정을 받고, 의사의 최종 판정이 있어야만 면허가 취소된다.

일본은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감소를 위해 1998년부터 면허 반납제를 실시하고 있다. 면허를 반납한 노인에게는 교통비를 지원해주고, 병원비용 등을 할인해 주는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이번 사고 이후 고령 운전자들이 가족의 설득으로 면허를 반납하는 사례가 늘긴 했지만, 당장 이동수단이 없어지는 문제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꺼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했다.

따라서 일본에선 고령 운전자만 비난하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령별 사고 비율을 보면 24세 이하와 75세 이상의 사고 비율은 큰 차이가 없다. 일각에선 자율제동장치 차량에 한해 고령자에게 운전면허를 발급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아베 총리도 안전장치 보급은 물론 노인들이 면허를 반납하면 다른 이동수단을 제공하는 대책을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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