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페인의 한 스포츠 신문은 과학자들이 FC 바르셀로나의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를 현재의 기술로도 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주장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스페인이나 남미 사람들은 그들의 ‘풋볼’과 관련해선 절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스페인의 유전학자들이 자국의 축구팀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귀여운 실언을 한 것이라 해도 복제인간의 가능성이 지금 우리 사회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양계장, 양돈장 등에서 일하며 우리 사회에서 식용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육되는지에 대해 썼다. 내가 동물들을 다루며 빈번하게 떠올렸던 존재 역시 복제인간이었다. 왜냐하면 동물을 도구로, 상품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최종 형태는 복제인간이 될 것이라 예측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가장 철저하게 탐구한 소설 중 하나가 바로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다. 이 소설은 복제인간 기술이 상용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 복제인간은 시험관에서 태어나 외부와 고립된 일종의 기숙학교에서 성장한다. 이들은 성인이 되면 ‘진짜 인간’에게 짧게는 2번, 많게는 4번 정도까지 장기를 적출당한 다음 죽게 된다.

물론 과학기술이 ‘나를 보내지 마’가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과학자들이 연구 중인 방법은 돼지의 몸 안에 인간의 장기가 자라도록 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 쳐도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진 복제인간의 ‘사용’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의 연구가 모두 실패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니까 다른 동물의 몸 안에 배양한 인간의 장기는 이식 후에 모두 치명적인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된다고 말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복제인간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뿐이다.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이 길을 추구하려고 할까.

거기에 대답하기 위해 인간이 다른 인간을 가축처럼 부리는 것이 이상할 게 없었던 시절, 모든 사람의 목숨이 동등하다고 믿지 않았던 시절로 되돌아가 보자. 1930년대, 조지 오웰은 한 시민단체의 요청으로 영국 북부의 탄광 지역을 취재한다. 이를 바탕으론 쓴 책에서 그는 당대 문명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이렇게 덧붙였다.

“젊을 때 땅속에서 허리에 마구 같은 띠를 차고 두 다리를 사슬로 이은 채 팔다리로 기고 광차를 끌며 일하던 할머니들이 아직도 더러 살아 있다. 그들은 임신한 상태로도 그런 일을 하곤 했다. 나는 심지어 지금도 만일 임신한 여자들이 땅속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석탄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석탄 없이 살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리라 생각한다.”

오웰의 이러한 예상이 단순한 심술이나 냉소가 아니라면, 이 발언 속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아주 작은 조각의 진실이라도 담겨 있다면, 언젠간 우리가 복제인간의 장기를 이용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예뻐지기 위해 아니면 정력이 세지기 위해서도 그들을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내다보는 것이 현실적인 예측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만일 약자를 착취해 커다란 이득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그들을 걱정해서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으리라는 점이다.

지난 3월 14일, 각국의 과학자들이 생명공학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작년 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허젠쿠이 중국 남방기술대학교 교수의 유전자 편집 아기 탄생이 직접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진 이 선언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 배아의 유전자 편집 임상 적용이 향후 5년간 엄격히 금지돼야 하며 이를 감독할 국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한국의 경우는 생명윤리법이 강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포함해 임상 전 연구도 금지되어 있어 이 모라토리엄은 우리나라의 과학계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필요한 연구는 지원하고 윤리적 선을 넘어서려는 시도에 대해선 적절히 제지할 수 있는 국제적 구심체가 마련되길 기원한다.

한승태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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