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땅에서 사는데 대통령과 보통 시민의 인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대통령의 경제 관련 발언을 접하면서 거듭해서 드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 낙관은 ‘족보’가 있다. 지난해 5월 고용참사를 일으킨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 위기에 처한 자동차·조선 산업에 대해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했다.

현 상황을 놓고 “총체적으로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각종 통계는 일관되게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수출과 투자, 소비 등 경제의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다는 것이다. 전 분기 대비 0.3% 역성장한 1분기 국내총생산(GDP) 충격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시민들이 보고 듣고 몸으로 부딪히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식당과 주점에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는 폐업 인사말이 붙는 일이 늘고, 공단이 비어가고, 시장에서 사람 보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예측기관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앞다퉈 2% 초반으로 내리고 있다. 통계 분석에 발군이라는 평을 듣는 김동원 고려대 초빙교수와 유경준 전 통계청장은 1%대로 떨어질 것으로 본다. 그런데 눈 밝은 전문가들을 진정으로 전전긍긍하게 하는 것은 성장률 0.1% 포인트, 0.2% 포인트의 높고 낮음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다. 한 경제가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치를 가리키는 잠재성장률의 추락이 대표적이다.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 총요소생산성 등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이번 정부 들어 세 요소 모두 크게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도 과장법 등 레토릭(修辭)을 구사할 수 있다. 과도하게 비관적인 경제 전망에 대해 일침을 가할 수 있고, 그것은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놓고 ‘성공하고 있다’고 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현실 왜곡이다. 청와대가 경제 악화론을 반박하고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인용하는 통계들도 ‘반(半) 사실’이거나, 나쁘게 말하면 ‘반(半) 거짓’이다.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면서 자주 언급하는 상용근로자 증가도 그렇다. 상용직은 고용이 보장되는 정규직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단지 고용계약이 1년 이상인 근로자를 가리킨다. 상용직은 이미 2002년부터 증가해왔고 임시직과 일용직은 꾸준히 감소해왔다. 이런 추이는 지난해는 물론 올 들어서도 특별히 변한 것이 없어 상용직 증가가 고용의 질이 높아졌다는 증거라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게다가 4월 고용동향에서 주당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62만4000명이 줄었지만, 36시간 미만 단기 일자리는 80만2000명이 증가했다. 이런 데도 문 대통령과 정태호 일자리 수석은 고용의 질이 좋아졌다고 한다.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운영의 방향이며 정책의 지침이다. 부정확하고 객관성이 떨어지는 대통령의 말이 거듭되는데 국정에 대한 신뢰가 생겨날 수 없다. 국정의 효율성을 낮추고 사회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최근 확연히 나빠지는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대통령의 낙관론을 놓고 이런 해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틀린 줄 알면서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호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를 선별해 확산시키고 논란이 일면 ‘진영 싸움’으로 몰고 가는 전술이다. 이는 뉴욕대 정치학과 석좌교수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의 조언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저서 ‘독재자의 핸드북’에서 정치인들에게 보편적 지지 대신 정권 획득과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 전체로는 큰 비용을 요구한다. 사회 갈등을 격화시킨다. 노무현정부에서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 경기대 교수는 ‘대통령의 권력과 선택’에서 “자신의 지지층 중심의 국정운용이 정권 획득, 유지에는 효율적인지 모르지만 한 국가 전체 비용의 측면에서 보면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고 했다. 특정 지지층 중심의 국정운영은 반대 측의 강고한 결집을 불러와 오히려 정치적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사회통합을 이뤄야 하는 대통령의 기본 책무에도 어긋난다. 근년에 지지층에만 의존하는 통치를 시도한 대표적인 정치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인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는 TK(대구·경북)와 고령층 등 골수 지지층만 바라보고 국정을 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였던 어제, 김해 봉하마을에는 수 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갈수록 높아지는 노 전 대통령 추모 열기는 그와 이번 정부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지지층 반대를 무릅쓰고 나라 전체와 미래를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결단한 그에 대한 재평가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재평가의 계기를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후계자로 여겨지는 문 대통령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인가.

배병우 논설위원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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