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늦봄의 어느 날, 나는 공원 정문에서 가족들을 기다렸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서로 다른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 우리가 오랜만에 만남의 장소로 택한 곳은 다름 아닌 서울대공원이었다. 장소를 정한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에겐 우리가 여전히 어린이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모두 개인파산 혹은 개인회생을 신청한 상태였다. 이메일이나 휴대폰으로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만 지금처럼 카카오톡이 없었기 때문에 단톡방에서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평일 오전, 서울랜드는 한산했다. 우리는 온종일 마음껏 놀기로 하고 전원 다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무엇부터 탈까 의논하다가 의견이 합쳐지지 않자 어머니는 각자 타고 싶은 놀이기구를 타다가 세 시간 후에 이곳에서 모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따로 놀다가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 안부를 물었다. 이런 식의 질문이 오갔던 것 같다. “이빨 아픈 건 치료했니?” “시험은 잘 봤어?” 그 어색하고 엉뚱한 나들이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빚 때문에 해체되었던 가족이 다시 만난 장소로 놀이기구가 가득한 서울랜드는 더없이 적절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싸우고 헤어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바이킹은 다 같이 타기로 했다. 나는 가장 높이까지 올라가는 꼭대기 자리에 앉았다. 남동생과 언니는 내 반대쪽 꼭대기에, 부모님은 중간 자리에 앉았다. 바이킹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심장박동도 조금씩 거세어졌다. 나는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 아래쪽에 있는 언니와 동생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우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대공원은 늦봄의 향기로 가득했다. 아카시아를 비롯한 온갖 꽃향기가 놀이기구를 타는 우리의 폐를 더욱 팽팽히 부풀렸다. 우리는 식사를 한 후 나란히 벤치에 앉아 솜사탕을 먹으며 파산 면책을 받은 다음 다시 모여 같이 살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늦봄은 나에게 그런 계절이다. 흩어진 직소퍼즐을 다시 끼워 맞출 수 있는 시간. 포기해버리기엔 아직 이른 때.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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