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독립유공자 증손·고손자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적은 메모. 가수, 교수, 국회의원 등 다양한 꿈이 적혀 있지만 "나의 꿈은 없습니다.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과거의 어려운 환경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찾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메모도 있다. 흥사단 제공

고교생 A군의 외고조할아버지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다. 항일운동이 본격화되자 중국으로 망명해 무장투쟁과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A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광복 후 수십년이 지나서야 고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어머니가 결혼해 A군을 낳았다. 하지만 경제적 기반이 없어 A군의 부모는 식당일로 겨우 생계를 꾸리고 있다. 독립유공자 4대손인 어머니와 5대손인 A군은 현행법상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보상을 받는 유족의 범위를 손자·손녀까지로 제한해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 후손들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생활지원금 제도로 뒤늦게나마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 이후 세대는 지원 대상이 아니어서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 지원을 받는 독립유공자 후손은 대부분 고령이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자녀 및 손자녀 중 60대 이상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의 73%다.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독립유공자 손자녀의 평균 연령이 2017년 기준 72세라는 자료도 있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경우에는 그 후손이 현재 증손이나 고손까지 대가 내려온 상태다. 정작 학비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놓인 것은 증손과 고손자녀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선 손자녀 이후 세대까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14일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기 전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사라지게 하겠다”며 독립유공자 후손 생활지원금 사업을 2018년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독립유공자의 증손·고손자녀들이 조상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버리는 것도 문제다. 증손·고손 돕기 장학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흥사단의 이춘재 상임공동대표는 27일 “자기가 독립운동가 후손이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돈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조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돼야 하는데 그런 아이들이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훈처는 현재 독립유공자 증손·고손에 관한 수치를 파악하지 않고 있다. 자녀 및 손자녀가 모두 사망했을 때 등록한 증손 448명과 고손 9명이 알고 있는 숫자의 전부다. 보훈처 관계자는 “법률상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대상자가 손자녀까지로 한정돼 있어 그 이후 세대 자료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독립유공자 후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증손자녀를 포함한 독립유공자 후손 중 최다 2명까지 보상금이나 생활안정자금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만 다른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 때문에 유족 범위 확대가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또 증손 이후까지 지원할 경우 대상자가 급증해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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