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왼쪽)과 당시 첨부됐던 문서.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제공

이름 없는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이 동학농민혁명 125년 만에 전북 전주에서 영면에 든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법적 소송에 휘말리게 돼 편안히 잠드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전주시는 “다음 달 1일 전주 완산칠봉에 조성된 동학농민혁명 추모공간인 녹두관에 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을 영구 안장한다”고 26일 밝혔다. 하루 전인 오는 31일엔 전주 완산도서관에서 동학농민군 전주 입성 125주년 기념식과 국제학술대회를 열 계획이다.

유골은 일본군에게 처형된 이름 모를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머리뼈다. 1995년 일본 홋카이도대학의 한 창고에서 발견됐다. 유골 측면에는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머리)’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함께 발견된 문서에는 ‘메이지 39년(1906년) 9월 20일 진도(전남)에서 시찰 중 수집’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년 뒤 국내로 봉환됐으나 안치할 묘역을 찾지 못하다가 2002년부터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왔다. 이종민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유골을 어렵게 찾았지만 고이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죄송한 마음이 컸다”며 “안장식을 계기로 인간존중과 만민평등의 거룩한 동학 정신이 계승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뒤늦게 전남 진도군이 유골 반환 목소리를 내면서 상황이 순탄치 않게 됐다. 진도군은 지난 21일 유골 현상변경금지 가처분신청을 전주지법에 냈고, 유골 반환 소송도 내기로 했다. 진도군은 “유골이 수습된 것으로 알려진 진도읍 송현리 묘지와 유골에 남아있던 토양의 성분이 일치했다. 당연히 기록과 토양으로 확인된 연고지로 모셔야 한다”고 밝혔다.

유골 안장 사업은 기념사업회가 2001~2014년 6차례에 걸쳐 진도를 비롯해 전북 정읍과 김제 등을 상대로 추진했으나 주민 반대와 지자체의 미온적인 자세로 번번이 무산됐다. 진도군도 그동안 두 차례나 제안을 받지 않다가 2014년 전주시가 나서자 이듬해에서야 문제제기를 했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국민 관심사가 높아지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기념사업회와 전주시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이지만 안장 절차를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념사업회측은 “2008년 12월 이사회에서 ‘진도에 국한하지 않고 적당한 안장 장소가 있으면 유해를 모시겠다’고 결의하고 진도군에 ‘다른 계획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공문을 보냈으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며 “더는 이 사업을 미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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