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화웨이 매장 옆을 지나고 있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로 구글, 퀄컴, ARM 등 주요 IT 업체들이 부품과 서비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AP뉴시스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로부터 거래제한 기업으로 지정된 이후 와이파이, SD카드 등 기술표준 제정 기구에서도 잠정 퇴출되는 등 고립 국면이 가속화되고 있다.

26일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무선 기술표준을 정하는 와이파이연맹(Wi-Fi Alliance)은 화웨이의 참여를 일시 제한(temporarily restricted)했다고 밝혔다. 이 연맹에는 애플과 퀄컴, 브로드컴, 인텔 등이 참여하고 있다.

반도체 표준을 정하는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도 화웨이가 미국 정부의 제재가 해지될 때까지 회원 자격을 자발적으로 정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닛케이아시아리뷰에 전했다. 화웨이는 휴대용 기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메모리 카드 포멧인 SD카드 표준을 개발하는 SD협회 명단에서도 삭제됐다. SD협회는 미국 상무부 명령을 준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는 이들 기술을 이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들 기술표준을 정할 때는 관련 논의에 참여할 수 없다. 글로벌 기업들은 미래 기술표준을 정할 때 자사에 유리한 표준을 정하기 위해 무기없는 전쟁을 벌인다. 화웨이가 앞으로 관련 논의에서 배제된다면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화웨이는 최근 10여년간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이런 성장 배경에는 미국 경쟁기업들의 기술을 훔치고 베끼는 이른바 ‘기술 도둑질’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관행이 미 정부가 최근 펼치는 강공의 한 원인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화웨이의 기술 도용 및 절취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WSJ는 미 연방법원에 제기된 화웨이 관련 소송 10건을 분석하고 미 정부 관리들과 전 화웨이 직원들, 업계 관계자 등을 상대로 취재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 통신장비업체 시스코는 2003년 1월 소프트웨어(SW) 및 관련 매뉴얼을 도용한 혐의로 화웨이를 고소했다. 당시 화웨이는 시스코의 SW 기술을 모조리 베끼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지닌 버그(결함)까지 복제했다. 사용자 매뉴얼도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 복사됐고, 이 때문에 시스코 매뉴얼의 오타까지 그대로 배포됐다. 마크 챈들러 시스코 법률고문은 중국 선전 화웨이 본사에서 오타를 증거로 대며 책임을 물었지만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은 “우연의 일치”라고 발뺌했다. 하지만 소송이 길어지자 화웨이는 2004년 7월 시스코의 기술을 도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미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로라 역시 화웨이가 저지른 기술 도둑질로 피해를 입었다. 모토로라는 2010년 7월 화웨이를 디바이스와 무선 네트워크를 연결시켜주는 최신 장비 SC-300 기술을 훔친 혐의로 소송을 걸었다. 런 회장의 친척이면서 당시 모토로라에 재직하던 판 샤오웨이가 런 회장에게 SC-300의 스펙(사양) 정보를 흘린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후 화웨이는 같은 사양의 장비를 만들어 수출했다. 모토로라는 중국 정부가 자신들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뒤에야 소송을 취하했다.

화웨이는 경쟁사 기술을 훔치기 위해 ‘스파이’도 노골적으로 이용했다. 미 이동통신업체 T모바일은 2014년 9월 화웨이를 영업기밀 절취 혐의로 고소했다. 당시 화웨이 직원들은 중국 내 T모바일 공장에 들어가 사람의 손가락을 흉내내는 스마트폰 시험용 로봇 ‘태피(Tappy)’ 기술을 알아냈다고 한다. 화웨이는 엔지니어들에게 해외 기업의 최신 기술을 빼돌릴 것을 반복적으로 지시했다고 WSJ는 전했다. T모바일은 소송에서 이겨 480만 달러(약 57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중국도 미국 주도의 화웨이 봉쇄에 맞서기 위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IT 인프라 사업에서 인터넷 관련 부품과 소프트웨어 조달 시 ‘국가안보’ 위험을 반드시 점검토록 하는 ‘사이버 보안 심사 방법’ 규제안을 공개했다. 이는 국가안보에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거래를 금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화웨이 거래 금지’ 조치에 맞서 미국 첨단기술 제품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새 규제안은 ‘외국 정부의 자금 지원이나 통제를 받는 경우’ ‘정치·외교·무역 등 비기술적 요인에 따른 상품·서비스 공급 중단 가능성’을 중점 평가 대상에 포함해 사실상 미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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