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의 한 PC방에서 이용객들이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5일(현지시간) 게임 중독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하는 내용의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안(ICD-11)을 통과시켰다. 국민일보DB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포함한 국제질병분류 개정안을 통과시키자 26일 네티즌들이 발칵 뒤집혔다. ‘게임을 즐겨하는 사람=게임 중독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해사례가 보고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논의를 미룰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에서 게임이 여가생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번 결정을 계기로 체계적인 연구와 건전한 논의의 장이 펼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한국이 유독 게임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로 환경적 요인을 꼽았다. 이 교수는 26일 “게임을 대체할 만한 놀이문화가 없고 청소년의 경우 과도한 입시경쟁에 몰리다보니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며 “질병코드 등재가 취미를 막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질병코드화는 병원에 갈 때 보건의료 서비스를 하는 차원일 뿐”이라며 일부 네티즌들의 오해도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WHO 개정안 발효까지 남은 기간 업계, 정신건강 전문가 등이 포함된 협의체를 구성하고 현장 적용 효과에 대한 연구도 수행해야 한다"며 “치료 방식은 무작정 게임을 못 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 자기통제력을 키워주도록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두헌 용인송담대 컴퓨터게임과 교수 역시 “게임 외에 청소년이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없다”고 했다. 다양한 문화를 즐길 경제적 능력이 없고, 학업에 바빠 야외활동도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송 교수는 학업 스트레스에 대한 도피처로 게임을 하는 게 청소년 성장과정의 일부라고 했다. 그는 “특정 게임에 집중하는 것도 발달에 미치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인 만큼 중독 연구 때 성인과 청소년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임 중독’이라는 용어도 거부감을 준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WHO에 등재된 용어는 ‘addiction’(중독)이 아니라 ‘disorder’(장애)”라며 “‘addiction’은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에서만 주장하는 과장된 표현”이라고 전했다. 초기 연구에서 잘못된 번역이 쓰이면서 사람들의 인식에 오해가 쌓였다는 분석이다. 그는 “그동안 나온 게임 중독 논문의 신뢰도를 따져보면 엉망인 연구가 너무 많다”며 “게임학자와 의학계, 게임산업계, 복지부와 문체부까지 모두 참여해 최소 3년 이상 장기적인 공동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인터넷게임 사업자에게 치유부담금을 부과하려 했던 ‘신의진법’이나 청소년 인터넷게임 사용 시간을 제한한 ‘셧다운제’ 등 실패한 정책의 선례가 ‘규제=금지’라는 인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호경 서원대 산업대학원 문화기술산업학과 교수는 “게임 중독은 한국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 비해 한국은 충분한 연구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중독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척도 개발부터 나선 뒤 질병코드를 만드는 게 순서”라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국제기구의 정의가 무조건 맞는다고 따라가기보다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며 “게임 중독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오히려 이 제도가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은 최예슬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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