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여운학 (15) 한국 교계 원로들 언행록 출판… 하나님께 감사

말씀 생활화의 본 보여준 원로들 아름담고 감동적인 언행 모아… 믿음의 책들 많이 출판 한다 소문

여운학 장로가 규장문화사를 설립하고 1980년대 초 출간한 책들. 한경직 조용기 목사, 장기려 박사, 김용기 장로 등의 책을 펴냈다.

한경직 목사님은 숭실학교 학생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승훈 선생은 숭실학교를 설립한 후 조만식 장로에게 교장직을 맡겼다. 한 목사님 등 학생들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고통 속에 누워 계시던 이 선생을 병문안 차 찾아뵀다. “당근과 채찍을 쓰는 일본 경찰들의 간교한 유린 정책에 애국지사들이 넘어가고 있소. 학생들은 끝까지 나라 사랑의 의지를 지켜주기 바라오.” 이 선생이 몸을 일으키며 학생들에게 호소했던 말을 전하며 한 목사님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 목사님은 서울 영락교회를 통해 많은 구제사업을 했다. 그중 하나가 장례사업이었다. 누구든지 죽기 전에 영락교회에 등록만 하면 그 사람의 장례를 교회 장례부에서 치러준다는 소문이 났다. 아무리 전도해도 불응하던 청계천 사람들이 죽을 때만 되면 와서 교회에 등록을 했단다. 한번은 장례부장 장로가 교회 내규를 바꿔 등록하고 한 달 이상 된 사람만 장례를 치러 주자고 제안했다. 한 목사님은 “그대로 해주시라요”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고 한다.

비록 극히 작은 부분이었지만 한국교회의 살아계신 원로들이 남긴 아름답고 감동적인 언행록이 책으로 나오는 데 쓰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김용기 장로, 장기려 박사, 한경직 목사는 각각 다르면서 공통점이 있었다. 김 장로님에게서는 엄격한 아버지의 사랑을, 장 박사님에게서는 부드러우면서 강직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목사님에게서는 그 둘을 고루 갖춘 어버이의 사랑을 느꼈다.

세 분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스러운 아들이었다. 말씀 생활화의 본을 보이셨다. 두 분은 장로로, 한 분은 목사로 사명을 다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셨다. 세상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몸 바쳐 일하다가 불과 지난 반세기 안에 세상을 떠나셨다. 모두 나라사랑, 민족사랑, 주님사랑의 본을 남기고 가신 것이다. 이처럼 나는 믿음 안에서 출판을 통해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 복을 누렸다.

특히 송명희 시인의 숨겨졌던 믿음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동참케 하신 주께 감사드린다. 1985년 5월 규장문화사에선 그의 시집 두 권과 간증수기 한 권을 출간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의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타고난 육신의 불구로 인한 슬픔과 아픔을 믿음으로 승화시킨 시집의 반향은 컸다. 시집을 읽고 송 시인과 같은 처지에 있던 수많은 청소년이 믿음으로 육신의 비참함을 이겨내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규장문화사에서 발행한 이영희 전도사님의 주일학교 교재 시리즈도 100종에 이르렀다. 이 시리즈는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발행하는 주일학교 공과교재에 선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규장이 공과교재를 컬러판으로 바꾸자 교단들의 공과교재도 컬러판으로 바뀌었다.

교계에서는 규장문화사가 좋은 공과교재와 믿음의 책들을 많이 출판하는 회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남모르는 높은 이자를 갚기 위해 또 이자를 얻어서 이자의 이자를 갚아나가는 비참한 운명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문제는 1984년 몹시 추웠던 어느 겨울날 아침에 발생했다. 출근하자마자 전화벨이 울어댔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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