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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시평-민세진] 다이내믹 코리아의 추억


20년 전인 1999년 5월, 우리나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로 들끓고 있었다. 1997년 말 시작된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우리나라는 1년 만에 돈을 갚기 시작해서 300 안팎까지 떨어졌던 종합주가지수가 1999년 5월에는 잠깐이지만 800을 돌파하고 당시 방한한 IMF 총재는 한국이 확연히 위기를 벗어났다고 격려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개최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정부가 국가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선정한 슬로건 ‘다이내믹 코리아’는 외환위기 극복, 월드컵 4강 달성과 맞물려 단순히 구호가 아닌 실체로 구현된 상징적인 표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역동성은 경제 분야에서도 관찰됐다. 단적인 예로 국민총생산(GDP) 성장률을 보면, 공식적으로 통계가 집계된 1953년 이래 2010년쯤까지 그래프가 들쭉날쭉 널뛰는 듯한 모양을 보인다. 50년이 넘는 기간 딱 두 번, 1980년과 1998년에만 각각 제2차 석유파동과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이 나타났지만, 나머지 기간에도 성장률이 평탄하거나 지속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이 두 해를 제외하고 1965년부터 2000년까지 성장률이 떨어진 해에도 6%는 넘는다는 점이 눈에 띄고 1973년에는 14.8%나 됐다는 사실이 옛날이야기 같은 가운데 경제성장률의 등락은 이와 함께한 격동의 세월을 느끼게 한다. 여하간 성장률이 떨어지면 ‘내년에는 오르겠지’라는 기대가 있던 시절이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장률 등락 폭이 거짓말처럼 줄어들었다. 2010년에 6.5%였던 성장률이 2011년에 3.7%로 떨어졌을 때만 해도 다시 반등할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다음해에 2.3%로 떨어지고, 올라봐야 3%대 초반에 머무는 기간이 1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원래 경제가 성숙하면 성장률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분위기부터 ‘일본식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는 비관까지 기대 접기가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일단 스스로 다독이기에는 탐탁지 않은 정황들이 있다. 우선 이 정도 경제 수준으로 만족스럽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2016년 기준 2만7000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도 3%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곤 했다. 일찌감치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독일이 1990년에 5.7%, 미국이 2000년에 4.1%, 스웨덴이 2010년에 6% 성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장기 불황의 전조인가. 거시경제학에서는 전통적으로 경제 여건을 판단하는 핵심 변수로 통화유통속도를 주목했다. 통화유통속도란 말 그대로 돈이 돌아다니는 속도를 말한다. 어느 기간에 총 100만원어치 거래가 발생했는데 20만원의 통화로 이 모든 거래를 수행했다면 같은 통화가 5번 사용된 셈이다. 이때의 5를 통화유통속도라 한다. 통화유통속도는 경제가 성숙할수록 감소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람들이 현금이든 예금이든 돈을 쥐고 있으려는 성향이 커지면 더욱 감소한다. 이는 대체로 불황기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 중인 1998년 2분기에 대표적인 통화 분류인 M2의 통화유통속도는 13.8% 하락해 위기 직전인 1996년에 연간 4.7% 하락한 것과 대조된다. 2010년대 통화유통속도는 지지부진한 성장률처럼 3%대 이내 감소율로 횡보하고 있다. 통화유통속도 변화율이 성장률과 밀접하기 때문에 놀라운 결과는 아니지만 딱히 불황이라 하기도 어려운 답답한 상황이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통화유통속도가 비교적 안정적이면 교과서적으로는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는 재정정책보다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늘리는 통화정책이 낫다고 하지만, 돈을 풀면 실물경기가 살아나기보다 가계부채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수년간 경험에서 배운 결과다. 어쩌면 재정정책이든 통화정책이든 얼마나 푸는가보다 어떻게 푸는가가 중요한지 한참 되었는데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세진(동국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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